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돌아온 노희경 작가의 저력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제주 배경 옴니버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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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진. tvN 제공

노희경 작가가 김규태 감독과 돌아왔다. 2018년 '라이브' 이후 4년만의 귀환이다. 김혜자, 고두심은 물론이고 이병헌, 차승원, 이정은, 신민아, 한지민, 김우빈 등등. 출연진만으로도 역대급이다. 과연 이 드라마는 어떤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까.

◆노희경 작가라 가능한 캐스팅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일단 캐스팅 자체가 놀랍다. 김혜자와 고두심이 중심을 딱 잡아주고 그 위에 이병헌, 차승원, 이정은 같은 연기파 배우들은 물론이고, 한지민, 김우빈 같은 대세 배우들까지 포진했다. 웬만한 배우 한두 명만으로도 충분히 티켓 파워를 예감할 수 있는 캐스팅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이들이 한 드라마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톱배우들은 작품 선택에 있어서 자신이 원탑이 되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온전히 자기 작품으로 불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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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게다가 이렇게 많은 스타가 캐스팅이 되면 그 인물들 중 누군가는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기에, 관심과 주목에도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첫 회에 이병헌은 제주 구석구석을 다니며 갖가지 물건을 파는 트럭만물상을 운영하는 이동석 역할로 등장해 "고등어, 고등어, 오징어, 오징어, 계란, 계란"을 외치며 팔 물건목록을 테이프에 녹음하는 모습 하나를 보여주고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2회에 등장한 김혜자 역시 마찬가지다. 동석의 엄마인 강옥동 역할로 출연한 김혜자는 대사도 별로 없이 은희(이정은)가 태워주는 트럭을 춘희(고두심)와 타고 어시장에 내려 좌판에 앉아 물건을 파는 모습만 살짝 등장했다. 이병헌이나 김혜자 정도의 배우라면 이런 분량의 드라마가 꺼려질 수 있지만, 이들이 기꺼이 이 작품의 일부라도 참여하게 된 데는 노 작가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배우의 커리어나 상업적인 성공 같은 걸 차치하고라도 노 작가의 작품에 참여하는데 대한 즐거움과 가치를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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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그러고 보면 애초 14명의 인물을 옴니버스 방식으로 풀어내겠다는 기획의도 자체가 노 작가가 아니면 쉽게 내세우기 어려운 도전이다. 옴니버스 구성이라면 14명의 인물을 치우침없이 고르게 저마다의 이야기로 무게감 있게 펼쳐내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몇몇 배역만 스타캐스팅이 된다면 그 자체로 옴니버스 구성은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모두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을 채워 넣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이런 여러 인물이 고르게 무게감을 갖는 이야기를 노 작가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바 있다. 그 작품은 심지어 김혜자부터 나문희, 고두심, 윤여정, 주현, 김영옥, 신구 같은 원로 배우들로 가득 채워졌음에도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면면들을 드러냈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 구성만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의 중년 버전 같은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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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지친 도시인 어깨를 토닥여

'우리들의 블루스'는 첫 회 시작부터 그 배경이 제주도라는 걸 그냥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 대사로 드러낸다. 외국말도 아닌데 굳이 사투리에 해설 자막까지 붙여 대사로 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제주 사투리만이 갖는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느껴지는 인간적인 냄새가 작품의 분위기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 사투리로 대변되는 이런 분위기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하필 제주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이 작품은 저마다의 삶에서 지친 중년들이 그럼에도 서로 툭탁대기도 하고 때론 위로하기도 하며 버텨내는 그 삶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어서다.

노 작가가 그리려는 중년이 보여주는 삶의 아름다움은 제주를 닮았다. 섬으로 고립되어 때론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고, 세찬 파도와 바람으로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쓸어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바다를 터전으로 내주는 곳. 파도와 바람에 깎여버린 많은 세월들이 여기저기 밟히는 곳이 제주다. 물론 그런 시련들조차 무심하게 받아낼 정도로 강인해진 제주 사람들이지만.

첫 에피소드로 등장한 한수(차승원)와 은희의 이야기는 그래서 학창시절 은희가 짝사랑했던 한수가 제주도의 은행지점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건 묘하게 도시와 삶에 지친 이들을, 제주로 대변되는 삶의 에너지와 생명력이 끌어안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내와 딸을 골프유학 보냈지만, 성적이 뚝 떨어져 2부 리그로 강등된 딸과 더 이상 뒷바라지를 버텨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수는 흔들린다.

은희가 억척스럽게 일해 건물 여러 개를 가질 정도로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안 한수는 절망감 속에서 은희에게 접근해 당장 필요한 돈을 빌리고픈 나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한수의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희는 그저 한수가 제안하는 목포 여행을 흔쾌히 가자고 받아준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한수는 과연 은희를 통해 어떤 희망을 만나게 될까. 이 이야기는 그래서 도시에서 하루하루 마모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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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옴니버스 속 삶에 대한 존중

2회에 등장한 동창회에서 한수와 은희, 동석, 인권(최영준), 호식(최영준), 명보(김광규)가 함께 술에 취해 노래하고 노는 광경은 마치 학창시절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시끌벅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저마다 등골이 휘어지는 현실을 간신히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지만, 함께 모이면 어려서 툭탁대고 싸워도 아무 걱정 없이 찧고 까불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이것은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등장했던 노 작가 특유의 '친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이가 들었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프렌즈'라는 범주로 묶여질 때 가능해지는 끈끈한 관계들과, 그로 인해 서로 기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그것이다.

옴니버스 구성으로 14명에 이르는 인물을 누구 하나 소외되는 시선 없이 공평하게 담아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런 동창회 풍경 속에서 발견되는 친구의 관점이 투영되어 있어서다. 학창시절을 같이 보냈지만, 이들은 그 후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다. 은희는 손에 상처를 달고 살 정도로 칼로 생선대가리를 잘라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동생들 대학에 장가까지 보내고 건물도 여러 채 가질 정도로 부자가 됐다. 한수가 보기에 은희의 삶은 성공한 부러운 삶이지만 정작 은희는 자기 인생이 "가족들 뒤치다꺼리 하다 쫑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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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은희와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 한수는 서울로 상경해 은행지점장까지 한 성공한 삶이지만, 정작 빚에 허덕이는 한수는 삶이 퍽퍽하기 이를 데 없다. 집이 가난해 젊어서 엇나갔던 삶을 살았던 호식(최영준)과 인권(박지환)은 반에서 1,2등 하는 자식을 둔 아버지들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지만 어딘가 그래서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삶이 맞부딪치지만 동창회에 모이면 그런 차이들이 사라지는 친구라는 시선이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드리워져 있다. 옴니버스 구성 자체가 다양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존중이 담길 수 있는 이유다.

일단 이렇게 많은 스타급 배우를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또 그 배경이 제주도이고 그 곳에서의 리얼한 삶의 현장이 여러 매력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물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건 노희경이라는 믿고 보는 작가의 저력 덕분이지만.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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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한 장면.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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