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쇼와 국가 행사

박명기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박명기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박명기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박명기 전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변화와 다양성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힘과 가치가 전제돼야 한다. 변하지 않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바탕 위에서 대중문화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인문학에 바탕을 둔 예술은 치열한 탐구와 훈련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대중문화는 훨씬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동시에 개인적 취향이다.

보통 대중문화라 하면 그 대중이라는 말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이와 반대로 우리의 일상에 있는 문화는 대부분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고급 음식점 주요 행사장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려 주고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나 조각품, 공예품으로 장식한다. 구태어 고급진 장소가 아니라도 클래식이나 예술 작품은 누구에게나 거슬리지 않고 호감을 준다.

대중문화는 실용적이기보다 즐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클래식이나 미술, 문학은 감동을 일으키고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변하지 않는 힘과 가치,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다양성과 화려한 변화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관계와 같다. 원심력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탱할 구심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즉, 변화는 변하지 않는 가치와 그것을 지탱할 힘을 갖출 때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 취임식 행사를 멋지게 하기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할 것이다. 이를 정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은 대통령의 가치와 국가의 품격이 될 것이다. 행사를 멋지고 감동적으로 하고 싶다면 대통령의 취임사가 가장 중요하고 또 훌륭해야 한다. 행사를 빛내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로 재미나 화려함을 보여 주려고 해선 안 된다. 만약 재미있고 화려한 쇼를 하고 싶으면 행사 후에 뒤풀이로 하면 될 것이다.

일전에 우리 국군의 유해가 국내로 송환되는 행사가 있었는데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우수에 찬 바이올린 선율을 용사들에게 헌정했다. 이것이 잘못됐다기보다는 국군 용사 혼령들에게 듣도 보도 못했던 감상적인 분위기의 이런 곡을 바치는 것보다는 3군 군악대와 의장대가 연주하고 퍼포먼스를 했다면 명예롭게 전사한 국군 혼령들에게 훨씬 영예롭고 영광스럽지 않았을까.

어떤 행사를 할 때 행사의 여러 순서를 외관상 화려하고 멋지게 하려면 그 행사의 변하지 않는 가치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가 행사뿐 아니라 작은 규모의 공적인 행사에서도 가끔 수준 미달이거나 어울리지 않는 공연과 장식이 등장할 때가 있는데, 그 큰 이유는 그 행사 자체의 본질이나 목적을 잊고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를 돋보이게 하거나 그의 입맛과 수준에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행사를 수행할 때는 먼저 변하지 않는 인문학적, 문화적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 대선에서 그렇게 장기 집권을 장담하던 정부가 단 한 번만에 무너진 것 역시 철학이나 인문학적인 고민 없이 마치 국가권력을 개인의 권력처럼 사용한 것이 국민들의 두려움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 정부는 제발 자신들이 귄력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말고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시시각각 명심해야 한다. 사실 누구나 그리 생각한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삼 88올림픽 개·폐회식을 최고의 문화예술 퍼포먼스로 세계인들에게 보여 주셨던 이어령 선생님의 본질을 꿰뚫는 눈빛과 자신만만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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