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보라 작가 "포항 시집 와 문어·대게 등 해산물 시리즈 상상"

부커상(세계 3대 문학상) 최종후보작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
“희한한 상상이요?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게 즐겁잖아요”
기발한 창의력으로 세계 문학계 주목 “문어·대게 등 해산물 시리즈 쓰고 싶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심의에 오른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필명 정도경)씨는 "혼신을 다해서 써도 독자가 좋아할지말지 모르는데 최소한 내가 재미있는 글을 써야 조금이나마 낫지 않겠냐"고 웃음지었다. 신동우 기자

정보라(46) 작가의 '저주토끼'는 오싹한 소설이다.

한 노인이 친구의 복수를 위해 원한이 담긴 토끼 전등을 만든다. 토끼는 원수의 집안으로 들어가 손자의 뇌를 갉아먹는 등 저주를 완성시킨다. 잔혹한 이야기는 시종일관 작가의 담담한 필체로 무서움을 더한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는 첫 문장처럼 소설은 귀여운 토끼의 이미지를 섬뜩한 것으로 덧칠한다.

노벨문학상·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의 심사위원들은 저주토끼를 '마술적 사실주의'라 극찬하며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작으로 선정했다.

6년 전 같은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이후 또 한번 한국 작가의 작품이 국제적 인정을 받은 셈이다.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으로서는 국내 최초의 쾌거이기도 하다.

"얼떨떨해요. 내 일이 아닌 것 같고. 해외에서 한국의, 그것도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에 관심을 갖는다는게 신기할 정도예요"

햇살이 따뜻한 12일 경북 포항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는 "갑작스런 관심에 아직 현실감이 없다"며 무서운 작품 내용이 어색할만큼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국내에서 비주류로 꼽히는 장르문학(SF 등) 작가로 활동하며, 번역가와 시간제 강사를 겸임하던 그녀는 지난 2020년 8월 포항 출신 남편을 만난 인연으로 잠시 머물고 있다.

'정도경'이란 필명과 '정보라'라는 본명을 오가며 그녀는 자신의 작품 활동과 현실세계를 구분한다. '정도경'은 10여년 전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부모님 두분 다 철저한 이공계인이셨어요. 딸도 과학에 관심을 가지라고 어릴 때 관련 아동서적을 많이 사주셨는데 작가가 돼버렸으니 완전 역효과네요(웃음)"

대학에서 러시아 등 동유럽문학을 전공한 정 작가는 소비에트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니콜라이 고골과 알렉산드르 푸시킨 등의 몽환적 작품세계를 양껏 흡수했다. 번역가를 시작한 계기도 자신이 흥미있게 읽은 책을 주위에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에서다.

"번역이란 그 책을 읽고 내용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증거같은 거예요. 좋은 책을 먼저 찾아 읽고 친한 사람들에게 그 책을 선물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번역의 장점이죠"

정 작가는 1998년 단편 '머리'로 연세문화상을 수상한 이후 그저 재미있어서, 자신이 흥미있는 이야기를 써오다보니 어느덧 장르문학계 중견으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3기 대표까지 맡았다.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으로 지난해 발간된 '그녀를 만나다'를 꼽을 정도로 그녀는 당당하고 힘찬 여성상을 그리기 좋아한다. 이 소설은 한국 최초의 트렌스젠더 군인 고(故) 변희수 하사를 투영한 작품이다. 변희수 하사가 죽지않고 늙어 할머니가 됐을 때, 여전히 차별과 어려움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얼마나 당당하게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동시에 작가 본인을 투영한 주인공을 통해 미래의 자신에게 던지는 바람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 작가는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활동을 지지한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서 장르문학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호소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최근에야 넷플릭스처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발달로 장르문학에 대한 처우가 점차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의 인식은 순수문학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디지털문학상 등 정부 차원의 장르문학 행사가 있었지만, 대게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반짝 이벤트에 그치기 일쑤예요. 요즘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작품들 대부분이 장르문학이잖아요. K-컨텐츠 육성을 위해 반짝이는 작품들을 찾아 지원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작품에 대해 묻자 정 작가는 "해산물로 쓰는 코미디SF"라며 눈을 반짝였다. 발간되는 단편 제목부터가 '문어'이다. 남편을 만났을 때의 추억에 상상을 보탰다. 결혼 후 포항과 영덕·울진 등을 여행하며 느낀 즐거움을 해산물 시리즈로 담겠다는 목표다. 그 다음 작품 '대게'는 아예 포항 죽도시장이 배경이다. 기존 작품처럼 여전히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이다.

"시댁 제사상에 커다란 문어가 올라있어 엄청 놀랐어요. 또 덕구온천을 가려고 영덕과 울진을 지나는데 집게발을 치켜세운 대게 모형이 너무 귀엽더라구요. 남편과 시어머니까지 등장시켜 새우나 멸치, 김, 미역 등을 주제로 즐거운 상상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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