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품격 있는 퇴진을 보고 싶다

5일 오후 북악산 남측 탐방로를 통해 청운대 전망대에 오른 뒤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5일 오후 북악산 남측 탐방로를 통해 청운대 전망대에 오른 뒤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정치학자들은 대통령 퇴임 후 처신한 행적을 놓고 재임 기간이 8개월로 가장 짧았던 10대 최규하 대통령을 '바람직한 전직 대통령상' 1순위로 꼽는 경우가 많다.

총리 재임 중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잊혀진 대통령' 대접을 받았다. 임기가 짧았던 탓도 있지만 은퇴 후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고, 진중한 몸가짐과 청빈의 삶을 지켰기 때문이다.

최 대통령은 반세기를 낡은 고물 선풍기로 삼복더위를 식혔고 연탄불로 겨울 추위와 씨름하며 근검절약을 삶의 기둥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말년이 좋지 않았다. 우리의 아픈 현실이다. "다시 시민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봉하마을로 낙향한 노무현 대통령은 '은퇴 대통령'의 신문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됐으나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한 달 남짓 하면 또 한 사람, 이 나라 대통령의 뒷모습을 만나게 된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을 앞두곤 이런저런 이유로 조용히 칩거하다시피 했다. 나아가 차기 정부 인수인계에 협조적이었고, 후임 대통령과 인사와 현안에 대해 협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행보는 '뒤끝 작렬'이다. 스스로 끊임없는 논란과 문제를 일으켜 '잊혀진 삶'의 길보다는 현실 정치에로의 족쇄를 채우고 있다. '인사 알 박기' '북한산 개방 김 빼기' '김정숙 여사 의상비 논란' '자녀 관사 입주 재테크' '자택 깜깜이 매매' 등 국민들이 납득 못 할 행태만 보이고 있다. 해명과 의혹 공개 요구에는 모르쇠와 부인으로 일관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소속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채이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 잘했어요'만 쓸 게 아니라, 편 가르기와 정책 실패 등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국민이 제대로 평가를 해 줄 것"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떠나는 마당에 자신의 취임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퇴임사는 이랬으면 한다.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약속한 모든 것들은 공치사가 되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는 좌파만의 대통령이 되었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지난 5년간의 실정과 국민이 받은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지금 제 양심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습니다. 갈라치기와 분열 조장으로 국민 분노를 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저의 꿈은 이루었습니다."

"또 정통 역사를 부정하고,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으로 국가 이익도 침해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재임 기간 5년, 국민은 위대했지만 대통령의 정치는 거짓과 부정이 많았습니다."

"평등한 기회는 끼리끼리 불평등으로 사라졌고, 공정한 과정은 '내로남불'로 산산이 무너졌으며, 정의로운 결과는 특권과 반칙으로 허사가 되었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남겠다고 했는데 대국민 고소와 고발을 많이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와 같은 구차한 변명보다는 국민 앞에 실정과 무능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떠나길 기대한다. 이것으로 국민의 마음속에 한 가닥 연민이라도 남겨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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