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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민족의 앞날을 기대하며 그려준 무릉도원의 이상향

미술사 연구자

조석진(1853~1920), 도원도(桃源圖), 비단에 담채, 21.5×49.2㎝, 개인 소장.
조석진(1853~1920), 도원도(桃源圖), 비단에 담채, 21.5×49.2㎝, 개인 소장.

조석진의 '도원도'는 복숭아꽃 무성한 강가 언덕 사이에 있는 동굴 입구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 안으로 배 한 척이 들어가고 있는 그림이다. 안쪽으로 지붕들이 이어진 마을이 보인다.

도원도는 산수화의 한 주제로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로 널리 알려진 글에 의거한 그림이다. 무릉의 한 어부가 우연히 복숭아꽃 만발한 별천지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발견해 대접을 잘 받고 돌아왔는데, 아무도 다시는 그곳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도화원기는 이후 무릉도원 같은 세상을 꿈꾸는 글의 모델이 돼 중국문학사의 대가인 당나라 왕유, 한유 송나라 왕안석, 소식 등 문학가들이 비슷한 글을 지었고 화가들은 상상의 도원도를 그렸다. 도원도는 공동체의 이상향을 그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시는 원나라 주권(周權)이 도원도를 감상하고 지은 제화시이다. 주권은 도원도를 보고 제화시를 지었고, 조석진은 제화시를 읽고 이 도원도를 그렸다. 도연명의 문학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시가 되고, 시가 다시 그림이 됐다.

창망연수격진범(蒼茫烟水隔塵凡)/아득한 안개와 물은 세상과 멀고

원상하증곡곡산(源上霞蒸曲曲山)/도원의 노을은 산굽이에 걸려있네

일자어랑귀거후(一自漁郞歸去後)/한 번 어부가 왔다간 후

무릉춘색만인간(武陵春色滿人間)/무릉의 봄빛이 세상에 가득하네

소림(小琳) 화(畵) 심전(心田) 제(題) 위(爲) 수재군(壽齋君) 촉(屬)/소림(조석진)이 그리고 심전(안중식)이 글을 쓰다. 수재(이한복) 군의 부탁으로.

조석진이 그림을 그리고 제화는 안중식(1861~1919)이 썼는데 수재 이한복(1897~1944)이 그림을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밝혀놓았다. 수재는 무호(無號)라는 호로 잘 알려진 근대기 한국인 최초의 추사 김정희 연구자 이한복의 초기 호다. 조석진보다 44년, 안중식보다 36년 아래인 제자 출신의 젊은 서화가이자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이한복이 부채그림을 특별히 부탁했다.

그림에 날짜는 없지만 안중식이 타계한 1919년이라고 해도 이한복이 23세 때 일이다. 당대의 쌍벽인 두 원로 대가는 젊은 후배 세대에게 국망에서 벗어난 새 세상과 민족문화의 앞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상향을 그리는 도원도를 주제로 합작했을 것이다. 복숭아꽃, 복사꽃은 한자로는 도화(桃花)이다. 복사꽃 피는 도화동은 심봉사와 외동딸 청(淸)이, 뺑파가 살던 동네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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