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벚꽃 엔딩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메기 찜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다. 난분분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평상에 앉았으니 온갖 상념이 다투어 다가온다. 꽃은 이제 절정을 넘기고 기우는 중이다. 인생 덧없음을 생각하며 꽃타령을 하고 있는데 식당 주인이 생선 냄비를 들고 "살찐아!" 하고 부른다. 어디선가 비호처럼 고양이들이 달려온다.

고양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한 번도 녀석들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놈들의 전쟁을 이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고 만다. 생선을 보자 무리 중에 크고 살찐 얼룩이가 밥그릇을 차지한다. 고양이는 당연히 '야옹'이라고 해야 맞지 않는가. 생선을 뜯으면서도 계속 '으렁으렁' 소리를 낸다.

마치 케냐 국립공원 사파리에서 호랑이를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녀석은 소리로 제어하는 것이 부족한지 제일 큰 고깃덩이를 물어내서 발로 잡고 뜯기 시작한다. 지켜보는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크고 힘센 놈이 장땡이라는 생각이 들자 팔뚝의 터럭까지 소름이 돋는다. 저놈이 배불리 먹은 후에나 껍데기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이 약자의 몫이 되리라.

약육강식은 인간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승자독식이다. 한 나무에서 태어난 가지라도 유독 욕심 많은 형제가 있다. 착한 형과 얼치기 동생을 제치고 부모의 재산을 차지한 살찐 고양이 같은 사람 말이다. 그 집 주변에는 훔쳐 먹는 쥐새끼가 한 마리도 없었다. 높은 담장은 장미 넝쿨로 덮여 있었고, 워낙 큰소리로 떡 버티고 두 눈을 부라리니 감히 넘볼 수가 없었다. 그의 피붙이들은 가시에 찔릴까 봐 기웃거리기조차 싫어했다. 무서워서, 더러워서 멀리했으니 그 집은 고립된 성(城)이었다.

그런 그가 호흡곤란 증세로 황천길에 들었다. 뱃속에 가득 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았으니 숨이나 제대로 쉬었을까. 그의 집은 아방궁이었다. 삶의 목표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세상 전부인 듯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고 살다간 그였다. 천년만년 살 듯 움켜쥔 재산은 어느 손에 들어갔는지 가뭇없이 사라졌다.

생선 앞에 저 배불뚝이 놈은 요지부동이다. 저놈을 때려눕히면 힘없는 고양이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으려나 생각하는 찰나에 밥그릇을 엎으며 살벌한 싸움이 시작된다. 참고 기다리다 지친 고양이가 반기를 든 것이다. 아무렴 못 참지. 밥에 대해서는 비굴해지면 아니 된다. 진작 용기를 내 볼 것이지. 그래도 늦지 않았다.

살이 쪄서 부피가 큰 놈이 뒤뚱거리며 나가떨어진다. 화무십일홍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긴 놈이 하늘을 향해 "이야옹!" 승전고를 울린다. 진 놈이 비틀거리며 평상 밑으로 자리를 옮긴다. 잠시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랴. 화르르 꽃비가 내린다. 봄날은 올해도 덧없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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