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속돼있는 극단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1, 2주에 한 번씩 단원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연습실 청소도 한다. 그 하루의 마무리는 '헛심탄회'.
헛짓(극단명)+허심탄회(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는다는 뜻으로,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솔직한 것을 이르는 말)의 합성어로 단원 중 한 명이 작명했다.
이름 뜻 그대로 그간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서운함, 미안함, 바라는 점 등)을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이다. '솔직하게'라는 의미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로는 마음을 가볍게도 하고 무겁게도 한다.
타인 앞에서 스스로의 허물이나 단점을 내보이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하고 꺼려했던 본인으로서는 그 시간이 굉장히 불편했다. 누군가 "넌 이런 점이 좀 아쉬워"라던가 "너의 이런 모습은 좋지 않은 것 같아"라는 말을 하면 금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버리고 싶어했다. 그러다 보니 '솔직하게' 얘기한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헛심탄회를 했던 날, 단원 중 한 명이 "그 날, 너의 말들로 인해 나는 마음이 상했다"는 고백을 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 꽤나 컸다. 선뜻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으며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네가 오해를 한 것이다"고 오히려 상대에게 떠넘기려는 말들만 쏟아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후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이불킥'을 몇 번이나 했었는지 모른다. 사실은 평소 본인의 말투나 행동이 종종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으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배우란 누구보다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고,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해야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에서조차 그런 것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중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사랑받기 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받는 것이 낫다'라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그동안 외면하려고만 했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극단 식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늘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고, 어쩌다 좋지 않은 말을 들을 때면 그저 굴 파고 들어가 숨기 바빴던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는 타인에게 하던 나의 말과 행동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고 배우로서 무대에 설 때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지금도 헛심탄회는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달라진 건 내 마음, 말, 그리고 행동이다.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이제는 웃으며 "미안! 앞으론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할게"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얼마나 아름다운 변화인가.
나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고, 잘못된 것을 인정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