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류원주 씨의 시아버지 고 이병환 씨

손주들 병원 가는 일 도맡아…'키다리 아저씨'처럼 언제나 며느리 도와주셨죠

이병환 씨 가족들이 모여 함께 찍은 사진. 가족 제공.
이병환 씨 가족들이 모여 함께 찍은 사진. 가족 제공.
8년 전 칠곡경북대학교 병원에서 새로 사드린 중절모에 기쁨의 웃음을 날리시며 촬영한 이병환 씨의 모습. 가족 제공.
8년 전 칠곡경북대학교 병원에서 새로 사드린 중절모에 기쁨의 웃음을 날리시며 촬영한 이병환 씨의 모습. 가족 제공.

봄꽃이 활짝 웃으며 필무렵이면 우리 곁을 떠나간 아버님이 시리도록 더 보고싶다.

나에겐 20년동안 함께한 듬직한 아버님이 계셨다. 팔순의 나이에 키가 180cm가 넘고 100kg을 육박한 건장하신 '이장군'!. 1936년생이신데 그 시절 평균 키보다 훨씬 크셨단다. 힘도 엄청 세셔서 아무도 깔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이장군'은 총각때 힘 좀 쓰실 때 별명이라신다.

1995년 첫 손주(소윤)를 임신했을땐 차량을 매일 아침 깨끗하게 세차해서 나를 태우고 나의 직장(가산면 사무소)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으로 애기 놓기 전까지 열 달을 공주 모시듯 출퇴근 태워다주셨다. 퇴근때는 10분전 오셔서 사무실로 전화하신다.

"야~야~ 내 니 사무실 앞이다. 기다리꾸마. 마치고 천천히 나와라!" 어른이 밖에서 기다리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 뛰어 나올때도 있었는데 "넘어진다. 조심해야지. 홀몸도 아닌데."

그 시절엔 딴 곳에 잠깐 일탈도 하고 싶고 동료들과 수다도 떨고 놀고 싶었는데 매일 기다리시는게 억수로 부담이 되곤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어른이 어디 있으랴. 모두가 부러워 할 만한 며느리 사랑이다.

아버님은 "나는 부모가 10대 때 일찍 돌아가셔서 사랑을 못 받았다. 그래서 난 자식한테 정말 필요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라고 신혼 때부터 얘기해주셨다. 항상 근거리에서 필요할 때 부르면 짠하고 나타난 '키다리 아저씨'랄까, 손주 2명 병원 가는 건 내손으로 해본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감기에, 설사에, 어릴 때는 왜 그리도 많이 아프고 입원도 자주했던지 조금만 아파도 소아과로 이비인후과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발 동동 구르며 뛰어다니셨다, 손주 잘못될까봐. "일하는데 걱정하지 마라" 하시곤 알아서 척척 다녀오시고 자녀키울 때 어른들이 안계셨다면 아마 지금쯤 일그만두고 경력단절녀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시집 올 때만 해도 그렇게 산처럼 느껴지시던 분이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응급실 입퇴원 반복으로 60킬로 겨우 넘으시는 몸무게로 앙상한 마른장작 같으시니…. 마음이 미어지는구나. 그러시다 심근경색으로 두 번, 뇌졸중으로 한 번 쓰러지시고, 대동맥 수술에 수시로 폐에 물이 차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셨다.

병원비로 수천만원이 들다보니 그 추운 겨울에도 전기장판하나 켜두고 공기는 싸~하게 감기 걸릴듯 지내셔서 마음이 너무 아팠었지. "아버님 저희 그 정도로 힘들진 않잖아요. 감기약값 보다 기름 좀 돌리는게 나아요"라고 몇 번 얘기했지만 기름값이 부담이 되셨던가보다.

칠순도 그냥 넘어간지라 팔순잔치하려고 생각했지만 몸이 또 안좋아지셔서 입원했다 퇴원을 반복하시면서도 나만 보면 씨~ 익 웃으신다. "내 장난한번 쳐봤다고. 너희들 놀리려고 입원한거다"라시면서 말이다. 골골백세라고 아프시지만 현상태 유지로 오래 우리 곁에 계셨음 바래보았는데 정말로 2015년 4월19일 우리 아버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주무시듯이 우리곁을 떠나 먼곳으로 가셨다.

그렇게 애지중지 아끼시던 큰손주(소윤)는 이젠 어엿한 공무원이 되어 자기 밥벌이하고 있고, "우리장손, 우리장손" 입버릇처럼 흐뭇해 하던 둘째 손주(재윤)도 마음먹고 경찰시험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 아버님의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주신 보물인거같아요.

남아계신 아버님의 반쪽 우리 어머님! 기억이 흐릿해지고 치매가 와 일상생활이 조금 불편한 어머님을 저희가 잘 보살피며 오늘도 보고픈 마음을 억눌러봅니다.

커피,사이다를 유난히 좋아하시던 우리아버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가까이 모시고 있어서 너무 좋다. 언제든 생각나면 지나가면서도 들를수 있어서.

오늘 따라 너무 보고프다.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른날 "야! 야! 젊을 때 니 하고 싶은거 해래이. 이눈치 저눈치 보지말거래이. 머리도 세련되게하고 입술도 빨갛게 바르고. 젊은 아가 야시같이 꾸미고 "

허허허 웃으시던 모습 꿈속에서 만나요, 나의사랑 아버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매일신문이 함께 나눕니다. '그립습니다'에 유명을 달리하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그 밖의 친한 사람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그리움, 슬픔을 함께 나누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해 전하시면 됩니다.

----------------------------------------------------------------------------------------------------

▷분량 : 200자 원고지 8매,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1~2장

▷문의 전화: 053-251-1580

▷사연 신청 방법
1.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혹은 매일신문 홈페이지 '매일신문 추모관' 배너 클릭 후 '추모관 신청서' 링크 클릭

2. 이메일 missyou@imaeil.com

3. 카카오톡 플러스채널 '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검색 후 사연 올림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