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이제 거리를 좁힐 시간

김진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김진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김진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공연기획팀장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실험주의 작곡가 존 케이지는 다양한 시도와 혁신적 도전을 통해 장르 간 벽을 허물고, 음악적 소통을 통해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작곡가이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유명한 곡은 '4분 33초'이다.

이 작품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Tacit'(침묵)란 표제를 써놓고 어떤 연주자도 악기를 연주하지 않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4분 33초 동안 연주를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이다. 존 케이지는 이 곡을 통해서 어떤 소리(침묵, 관객들의 반응, 소음 등)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표현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지난 2년도 아마 이 곡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주변의 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 '4분 33초'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고, 많은 것을 앗아갔다. 경제적 손해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피해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근본적인 욕구와 사회적인 욕구들을 양보하고 타협하며 살아왔다. 욕구의 상실은 일상의 파괴를 불러오고, 이제 무엇이 우리의 일상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것뿐인가, 세상은 우리에게 전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메타버스, 5G, NFT 등의 기술발전은 우리 사회와 가상세계와의 거리를 급속도로 가깝게 연결하며 세상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이를 잠시라도 놓치면 현실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지 다들 걱정스러워한다. 또 매일 온라인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지만, 전원이 꺼지면 내 곁의 감동과 여운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 사회가 빠른 변화를 뒤쫓아 가는 덕분에 급격한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바로 '현장 예술이 주는 감동'이 그것이다. 그동안 예술은 온라인으로, 그리고 제약된 환경과 규모로 끊임없이 타자와 대화해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열정을 쏟아내는 연주자와 그 열정을 통해 영감을 받는 관객의 소통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어렵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의 끝이 희미하게 보이는 지금, 우리는 그토록 갈망해왔던 순간을 맞이한다. 4월 15일에 열렸던 대구시립교향악단 제483회 정기연주회부터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1천여 석이 전부 개방됐다. 챔버홀 역시 이날부터 240여 객석 모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대구에 발병한 이래 처음으로 객석을 100%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뜨거운 염원으로 연주자를 기다려온 대구 시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구 시민의 현장 음악에 대한 열망은 대구가 왜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2년간 우리에게는 저항할 수 없었던 변화와 고난이 있었지만, 그 또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쉼이라 생각한다. 우리 삶의 중심이자 원동력이 되어온 음악, 이제 거리를 좁힐 시간이다. 다시 음악은 흐른다. 잠시 더 큰 숨을 내쉬기 위한 침묵(Silence) 끝에 우리는 다시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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