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국무회의를 거쳐 공수처 관련 법, 경찰법, 국정원법 등 국회가 진통 끝에 입법한 권력기관 개혁 법률들을 검토하게 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오랜 숙원이었던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화가 드디어 완성됐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의 오랜 숙원'인 검찰 개혁이 완성되었으니 태평성대가 도래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검찰 개혁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리둥절하다.
일부에서는 제도 개혁의 완성이라고 했지, 언제 검찰 개혁의 완성이라고 했느냐는 머리카락 쪼개기식 반론을 제기한다. 더 아리송하다. '제도 개혁의 완성'은 달성했지만 진정한 개혁은 아직 멀었다? 사실이라면 지금 검찰 개혁론자들이 할 일은 명확해진다. 또다시 새로운 제도 도입을 위해 일을 벌일 게 아니고, 이미 완성된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실무적인 디테일을 조정해 나가는 일이다. 검경 협력이 더 원활하도록 시행령, 시행규칙, 내부 준칙 등을 만들고 경찰 수사 인력과 장비 등을 보강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이른바 검수완박법을 추진 중이다.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등을 개정,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만 검찰 개혁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역시 의아하다.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진작 추진했어야 마땅하다. 집권 5년을 지적하지 않는다 해도 국회에서 절대반지를 갖게 된 지도 2년이 넘었다. 진작 검찰 개혁을 완성했다면 진영을 막론하고 열화와 같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 20년 집권의 꿈을 이루었을 텐데 왜 미루어 왔는가 말이다. 이런 점이야말로 입법 추진의 동기가 불순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대선에서 패하고 이재명 전 후보 등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조짐을 보이자 부랴부랴 초치기 검수완박 입법에 나선 것이다. 국민이 지켜보는데도 "문재인, 이재명을 지키겠다"는 구호를 아무 부끄러움 없이 외치는 상황이다. 참으로 국민의 낯이 뜨겁다.
원칙적으로 어떤 범죄를 어떤 기관에서 수사하게 할지는 입법 재량이며 그러한 '입법자의 결정은 명백히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은 공수처 설치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헌재가 결정한 내용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수사권 조정 등은 국회의 입법권에 속하지만 그것이 이번 검수완박 추진처럼 명백히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부당할 경우 입법권의 헌법적 한계를 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체포·구속·압수·수색 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체포·구속·압수·수색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강제 처분이다. 검사의 영장 청구는 사법경찰관의 신청에 의할 수도 있고, 검사의 판단에 따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검사의 수사상 독자적 판단이 필요한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수사권이라 부르든 보완 수사권이라 부르든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개정 법률안은 검사가 독자적으로 영장 청구를 할 수 없고, 사법경찰관의 신청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검찰 수사권 박탈, 검사의 독자적 영장 청구권 박탈의 결과는 어떨까. 검찰의 보완 수사가 없었으면 묻혀 버렸을 가평계곡 살인사건에서 보듯 피해자는 선량한 국민일 것이다. 최대 수혜자는 검찰 수사의 칼날을 당장 피할 수 있는 권력자들일 것이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임시국회 회기를 잘게 쪼개는 살라미 전술 운운하는 것도 참으로 구차한 꼼수가 아닐 수 없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여 통과시킨 후 문 대통령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공포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도 정상적인 입법권 행사라 보기 어렵다. 마치 도망치듯 하는 모양새 아닌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야반도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예리한 말을 찾기도 어렵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 정말 모양 빠지는 일이다. 강경파에 휘둘리는 민주당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다. 그래도 동기, 내용, 절차 모두 국민의 박수를 받기 어려운 검수완박 입법은 이쯤에서 중단하는 게 현명하다. 전문가들이나 국민 여론에 못 이기는 체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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