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오랫동안 다시 하고 싶었던 서예학원을 갔다. 학생들도 있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아서인지 원장님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손 여사님'이었다. 나 스스로 아직 여사님으로 불리기엔 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호칭이 어찌나 어색한지 나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딴전을 피우곤 했다.
전공의들과 의대 실습 학생들을 데리고 회진을 돌던 어느 날이었다. 전공의 과정 후 군대를 갔다 와서 뒤늦게 fellow(전임의)를 하던 동기 녀석이 날 불렀다, "손양!!" 의대 시절 내 별명은 손양이었다. 특별한 의미 없는 무미건조한 단어였지만 문제는 그 상황이었다. 나름 교수의 위치에서 전공의와 학생들을 대동하고 회진을 돌고 있는, 근엄한(?) 상황이었는데 손양이라니. "야 손양이 뭐냐 손양이. 나름 무게 잡고 회진 중인데" 이미 일은 벌어졌겠다, 나도 반말로 되받아치는데, 친구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내가 홍길동이냐, 손양을 손양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옆에서 듣던 전공의와 학생들까지 빵 터져버렸다.
동기의사 5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었다. 교수님이지만 동기들끼리는 치고박고 주접을 떠는 얘기에 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그렇다. 이젠 junior 교수라고 하기는 좀 힘들고 과장까지 맡고 있는 위치지만 병원 복도에서 마주치는 동기들을 보면 여전히 그 친구의 근엄한 표정 뒤에 가려진, 그저 20살짜리 풋내기 대학생의 모습이 읽혀진다. 아마 그 친구들도 나를 보면 그럴 거다. 술 먹고 밤새워 노래하던 손양, 시험기간에 친구들을 꼬드겨서 놀러나가던 손양. '나는 학생들이 모르는 손 교수의 실체를 알고 있다' 속으론 이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 속에 있는 손 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직 죽지 않았다. 까불거리며 인생의 낭만을 외치던 그 소녀는 손 여사의 주름살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망설이고 주저하기보단 굳건한 믿음을 보여줘야 하는, 누리고 즐기기보단 돌보고 책임질 일이 많은 현실의 손 교수도 힘들 때는 때때로 내 안에 숨어있던 손양을 불러내 '나도 잘 모르겠는데'라며 맹한 표정으로 책임 없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대학시절 내 사진을 보고 아들이 "엄마 옛날엔 되게 젊었었네"란다.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그 시절의 미소는 정말 눈부시다.
스스로 빛날 때는 자기가 얼마나 빛나는지 알 수 없는 법이다. 우리의 찬란했던 시절도 지나고 나서야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게 된다. 그치만 그 말은, 어쩌면 지금의 손 여사도 꽃이고 별일 수 있다는 말, 5년 후, 10년 후에 2022년의 나를 보며, '2022년의 손 여사는 정말 반짝거렸었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나의 가장 늙은 날이지만 동시에 가장 젊은 날이다. 철없는 손양도 아름답고 갱년기 손 여사님도 아름답다. 아름다운 우리, 빛나는 오늘이 소중하다.
손수민 영남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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