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넘은 아파트에 사는 40대 A(대구 수성구 범어동) 씨는 최근 주민들이 만든 재건축추진위원회(가칭)로부터 재건축 동의 여부를 묻는 서류를 받았다. 주민 60% 이상이 투표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사업이 잘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A씨는 "인근 아파트도 재건축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됐지만 실제 진도가 잘 나가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희망 고문인 것 같아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했다.
대구 주택시장에서 재개발·재건축 기대감이 시들해졌다. 이미 공급 물량이 워낙 많은 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설비가 늘면서 좀처럼 현장에 활기가 돌지 않고 있다.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재개발·재건축 바람이 조금씩 분다지만 대구 사정은 딴판이다. 관련 사업을 진행하려는 움직임은 꽤 있지만 사업 진행 속도가 붙지 않는다.
수성구 수성동 일대 재개발 사업을 하는 B시행사 관계자는 "공급 물량이 남아돌아 분양이 잘될지 우려하는 판에 원자재 가격까지 올라 사업 수익률이 크게 떨어질 판"이라며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80여 개 사업장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2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대구 미분양 주택은 4천561가구로 1월보다 24.0%나 늘었다.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 중 가장 많다.
시멘트 가격 등 핵심 원자재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도 건설 현장에선 악재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쌍용C&E가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1종 시멘트 판매 가격을 7만8천800원에서 1만2천원 인상된 9만800원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대구의 식어 버린 재개발·재건축 열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 조사에 따르면 구축 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기대감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직방에 따르면 구축(입주 연차 30년 이상) 아파트 선호 여부는 지역마다 달랐다. 일반 아파트(입주 연차 5~29년)에 비해 구축 아파트가 높은 가격을 기록한 곳은 서울(4%), 경기(15%), 부산(6%), 전북(11%) 등 4개 시·도뿐이다. 이들 지역은 재건축 기대심리가 구축 아파트 매매 가격에 반영됐다는 게 직방의 분석이다.
반면 대구는 일반 아파트 대비 구축 아파트 가격이 0% 수준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구축 아파트 가격이 더 낮은 곳들에 비하면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대구 역시 구축 아파트에 대한 재건축 기대감이 약하다는 의미다.
지역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사업비가 늘면 그 영향이 고스란히 분양가에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분양가를 계속 높이기도 어렵다. 이미 미분양이 많기 때문"이라며 "결국 주민들이 원한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선 수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재개발·재건축 사업 자체가 매끄럽게 진행되기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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