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대한민국의 지성으로 불리던 이어령 선생님이 지난 2월 26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기호학자인 이 선생님은 "내가 가진 것은 언어밖에는 없다. 내가 하나님과 비록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어도, 그것이라면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바칠 수 있다. 그래서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을 썼다"고 했다.
22세에 문단에 등단하면서 '우상의 파괴'로 권위의식 파괴를 부르짖던 눈망울 강했던 청년, 그는 65년간 펄떡이는 언어를 때로는 샘물처럼, 때로는 폭풍우처럼 퍼부었다. 2017년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거부하며, 오롯이 암과 공생하면서 삶과 암의 'ㅁ' 받침을 고스란히 품었다. 지성이셨던 그 분을 보내며, 그의 처녀작 시집을 꺼내본다.
머리말에 "시를 쓴다는 것은 산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시는 후회를 낳고 후회는 시를 낳습니다. 문단 생활 50년 만에 처음으로 시집을 냅니다.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쁘기도 합니다"로 시작되었다. 시집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어머니들에게', '나에게', '시인에게', '한국인에게', '하나님에게'로 구분하였다.
'작고 이쁜 말들' 시에서 구름, 날개, 별 이쁜 말들을 따라 해본다. 님은 별이 되셨을까. 선생님은 가시면서도 '별이 되어'라는 이쁜 말을 했을 것 같다. '마지막 남은 말'에 내 머릿속의 단어들이 비듬처럼 떨어져도 "내 앞 이빨 근지럽게 하던 몇 마디 말/ 최초로 배운 내 모국어의 모음과 자음/ 이 말만은 안 된다/ 엄마 아빠"라는 구절이 있다. 그 말만은 한국인에게 잊히지 않을 이름이다. 마지막 가는 길, 그 이름을 부르셨을 것 같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에서는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의 언어를 이야기하라고 한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어느 무신론자는 결국 신에게 아름다운 시 한 줄 쓰도록 기도했다. 선생님이 남긴 이쁜 말들은 하늘에서도 지저귈 것 같다. 나, 남, 님. 처음은 같으나 끝이 달라지는 말, 같은 결을 가졌다. 시집을 읽으면서 소박한 마음으로 님에게 다가갔다. 님은 풍금처럼 가슴에 울리는 소리를 들려주셨다. 시를 읽는 나는 아름다운 시를 보면서 시 한 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같이 기도했다.
이풍경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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