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시트콤은 1993년 방영된 '오박사네 사람들'이다. 이 시트콤에는 구두미화원 두 명이 나온다. 한 사람은 '찍새', 다른 사람은 '딱새'로 불렸다. 찍새와 딱새는 속어(俗語)다. 찍새가 모은 구두를 딱새가 닦는다. 찍새가 영업직이라면 딱새는 생산직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영업과 생산을 하기보다는 분업해서 각자 하나에 전념하는 것이 낫다. 말을 잘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찍새,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이 딱새다. 분업화된 업무를 비교우위에 따라 전문적으로 수행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애덤 스미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모든 직업에 적용된다.
대학에는 행정을 담당하는 교수, 강의와 연구를 하는 교수가 있다. 종교에도 분업이 있다. 설교하는 목사와 선교하는 목사가 있다. 교황을 보좌하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오지(奧地)에서 순교한 신부도 있다. 불교에는 사판승과 이판승이 있다. 사판승이 사찰을 유지하고 이판승은 수행에 힘쓴다. 기업은 분업이 더 뚜렷하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영업이 중요하다. 주어진 업무만 잘해서는 임원이 될 수 없다. 영업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다. 임원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인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와 같은 금융기업에도 찍새와 딱새가 있다. 찍새가 돈을 끌어오면 딱새가 그것을 굴린다. 금융기업은 단순한 방법으로 돈을 번다. 많은 돈을 굴리면 된다. 도토리를 한 번 굴리는 것이 좁쌀을 백 번 굴리는 것보다 낫다. 찍새가 좁쌀을 도토리로 키운다. IT기업도 영업이 중요하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돈을 벌 수 있지만, 다른 개발자들이 생각지 못한 게임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저 그런 게임이라도 홍보를 잘해서 투자를 유치하고 상장(上場)하면 쉽게 돈을 번다. 그래서 IT기업에는 마케팅, 재무, 회계, 법률 전문가가 생각보다 많다. 이들이 찍새다.
대형 로펌은 찍새와 딱새 구분이 분명하다. 변호사들 스스로 찍새, 딱새로 부른다. 찍새가 사건을 수임하면 딱새가 소송을 맡는다. 전직(前職) 고위 판사, 검사가 찍새가 되지만 법률가가 아닌 찍새도 있다. 사람들은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기면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변호사 간 능력 차이는 크지 않다. 아니 클 수 없다. 비슷한 수업을 듣고 비슷한 책으로 공부한 변호사들의 법률 지식은 거기서 거기다. 법정에서 기상천외한 논리로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문제는 영업이다. 대형 로펌이 돈을 버는 방법도 단순하다. 고액 사건을 많이 수임(受任)하면 된다. 대형 로펌의 성패는 유능한 찍새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유능한 딱새는 많지만 유능한 찍새는 드물다.
어떤 변호사가 재판에서 이길 확률이 50%라고 가정하자. 이 변호사는 유능하지도 무능하지도 않다. 이 변호사가 10건의 사건을 수임하면 5건을 이기는가. 운이 나쁘면 3건만 이길 수 있다. 수임한 사건이 적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가 사건 100건을 수임하면 거의 50건을 이긴다. 수임한 사건이 충분히 많으면 확률 50%가 실현된다. 많은 사건을 수임하는 대형 로펌은 확실한 이윤이 보장된다. 불확실성이 사라진다. 이 원리를 경제학에서는 '위험 통합'(Risk Pooling), 수학적으로는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이라고 한다. 위험 통합을 통해 대형 로펌은 쉽게 돈을 번다.
국무총리 내정자 경력과 관련해서 논란이 많다. 그는 얼마 전까지 대형 로펌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4년 4개월 동안 18억 원을 보수로 받았다. 이 대형 로펌은 고위 전관을 많이 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무총리 내정자는 법률가가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컨설팅을 했다고 주장한다. 컨설팅은 다양하게 해석되는 단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전관이 기업 고문이나 사외이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고문이나 사외이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내정자는 지난 20년간 공직과 기업을 전전(輾轉)했다. 이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사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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