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합죽선 선추를 빙빙 돌리며 검무를 관람하네

미술사 연구자

신윤복(?-?),
신윤복(?-?), '쌍검대무(雙劍對舞)', 종이에 채색, 28.2×35.6㎝, 간송미술문화재단

장검을 양손에 들고 두 명이 춤을 추는 듀엣 공연을 그린 '쌍검대무'는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30점 중 가장 많은 인물이 나온다. 긴 무대를 오가며 일합을 겨루는 두 춤꾼, 두 명의 관람객, 이들을 시중드는 두 기녀, 세 명의 청소년, 제일 아래에 좌정한 악사 등 16명이다. 이들의 위계와 신분은 자리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각각의 인물은 생김새와 옷차림, 자세와 태도, 얼굴빛과 수염은 물론 표정까지 한 명 한 명 개성이 넘친다.

작은 화첩에 이렇게 많은 인물을 그리면서 2자루의 부채와 차면선, 대나무 안석, 3개의 긴 담뱃대와 흡연용품, 7장의 돗자리, 4종류의 모자 등이 실감난다. 모자는 무대복인 전복 입은 춤꾼이 쓴 무관의 전립, 양반과 악사의 흑립인 갓, 악사 중 제일 오른쪽 고수(鼓手)가 쓴 끝이 뾰족한 말뚝벙거지, 3명의 청소년 중 한 명이 쓴 노란 초립 등 4가지가 나온다. 서있는 심부름꾼 소년은 그냥 땋은 머리다.

모자의 묘사도 허투르지 않아 전립 안쪽이 파랑색임도 알려주고, 갓끈을 풀어 갓을 뒤로 제꼈는가 하면 제일 아랫단 여섯 개의 검은 갓과 한 개의 벙거지는 형태와 기울기의 각도가 자연스러운 리듬을 이루며 화면 구성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무대와 가장 가까운 귀빈석의 관람자는 접은 부채를 거꾸로 들고 있다. 부채에 달린 선추의 끈목이 부채머리에 두 번 돌려져 있고 길쭉한 선추가 수평인 것을 보면 이 분은 지금 선추를 빙빙 돌리며 공연을 관람하는 중이다. 마치 요즘 사람들이 손에 쥔 필기구를 무의식중에 손가락으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일 아래 제일 왼쪽 인물은 두 명의 검무기생과 6명의 반주자를 거느린 이 공연단의 수장이다. 지금으로 치면 연예기획사 대표다. 이 분이 푸른색으로 테를 두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이 대규모 예능인을 거느리고 있는 데 대한 예우다. 귀빈석 보다는 연하고 좁지만 테를 두른 두 장의 돗자리 중 하나다. 이 분은 차면선을 들었다. 부채는 아니지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휴대하며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것은 같아 '얼굴을 가리는 부채'라고 했다.

춤은 바야흐로 홍치마가 청치마를 무대 끝까지 몰아 부친 위기상황으로 곧 최후의 접전으로 승부가 판가름 나기 직전이다. 둘 중 승자는 누구일까? 청치마다. 청치마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칼자루 끝에 달린 장식품이다. 그래서 관객은 처음부터 우리 편을 응원하며 두 춤꾼의 검무를 관람한다. 풍속화의 재미가 깨알 같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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