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옆, 수런거리던 인력시장이 잠잠하다. 봄이라고는 하나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 한 사람씩 일거리를 찾아 떠난 자리에 모닥불은 재만 남기고 썰렁하다.
속살 뽀얀 무 하나를 손에 들고 발길을 돌리는 초라한 남자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동태 한 마리 넣어서 속풀이 국을 끓일 요량인지 내 알 바는 아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행색을 보니 세상살이에 속 끓이는 일이 수없이 많았을 것 같다. 약삭빠르지 못해 하루 일감을 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리라. 하기야 사는 것 별거 아니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뜨거운 국물 한 사발로 마음자리 가라앉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사람마다 자기의 욕망과 욕구를 향해 나름대로 속을 끓인다. 어떤 이는 권력을 또 어떤 이는 재물을, 어떤 이는 사랑을 향한 갈망으로 속을 끓인다. 나도 되잖은 욕심으로 수없이 속을 끓였다. 값비싼 귀금속과 명품 가방을 가지고 싶어 했고, 남들보다 앞에 서려고 안달복달했다.
하지만 밥벌이로 인한 속 끓임은 얼마나 처절한 일인가. 무를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무겁게 다가온다. 생계에 매달리는 가장의 모습은 서글프다. 삶이라는 명제 앞에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밥벌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누구라도 어쩔 수 없다. 밥벌이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다른 차원의 삶은 요원한 것이 된다.
무(無)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유(有)와 대립한다. 비존재, 허무, 공허이다. 남자는 하루 밥벌이를 위해 오늘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인력시장에 나왔을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뒤로하고 나섰으나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변변한 직장 하나 가지지 못한 남자의 마음은 속이 자글자글 끓어서 오그라들었으리라. 무 한 개에 속을 풀고 상처받은 자존감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나 성공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책임이다. 비록 벼랑 끝에 서 있을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희망을 버린 사람은 인간성마저 상실하고 황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혹독한 한파를 이겨내야 새 생명을 피워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신산한 삶을 산 사람은 향기가, 사람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오지랖도 넓지, 일면식도 없는 저 남자 때문에 왜 쓸데없이 속을 끓이는지 모르겠다. 뭉근하게 된장을 풀고 무를 넣어 장국을 끓일까. 모쪼록 내일은 남자가 일거리를 찾아 편안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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