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허경영이 쏘아올린 전화 한 통… '공해 수준' 地選 전화·문자에 유권자 스트레스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14일 대구 동구 경북지방우정청에서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및 우정청 관계자들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대구시선관위와 경북우정청은 택배차량에 선거 홍보 문구를 부착하는 등 이날 6.1 지방선거 홍보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맺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14일 대구 동구 경북지방우정청에서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 및 우정청 관계자들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대구시선관위와 경북우정청은 택배차량에 선거 홍보 문구를 부착하는 등 이날 6.1 지방선거 홍보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맺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안녕하십니까, ○○○○ 예비후보 ○○○입니다. 오는 6월 1일은 지방선거가…"

대구에 사는 A(32)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찡그리며 전화를 끊는다. 수없이 쏟아지는 6·1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자들의 ARS 투표 독려 전화 때문이다.

A씨는 "차단을 해도 다른 번호로 계속 걸려온다. 업무 전화일 수도 있어 일단 받지만 ARS 음성이 나올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며 "시장이나 구청장은 물론, 시·구의원에 출마한다는 사람들까지 매일 수 차례 전화를 쏟아붓는 통에 한동안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을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지방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다급해진 출마자들의 전화·문자 공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다. 광역·기초단체장부터 지방의원까지 수많은 이들이 출마하는 지방선거 특성 상 전화와 문자가 '공해 수준'으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상 원칙적으로 ARS 자동 응답을 이용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도 5월 19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ARS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전화로 지지를 호소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여기서 맹점이 발생한다. 예비후보들 상당수가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 없이 '투표 독려'를 중심으로 전화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녹음돼 있는 후보들의 코멘트는 대체로 자신의 이름과 예비후보 신분을 밝힌 뒤 "투표에 꼭 참여해달라"는 이야기로 끝난다. 선거법을 교묘하게 회피해 이름을 알리는 셈이다.

이런 방식의 간접 선거운동은 지난 20대 대선에 출마했던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가 사용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다는 게 출마자들의 설명이다. 통신사에서 안심번호 수십만 개를 받은 뒤 무작위로 계속 전화를 거는 식이다.

당시 허 명예대표는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전국적으로 전화를 돌리면서 많은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만큼의 인지도도 얻었다. 이후 이 방식에 주목한 선거 관계자들이 앞다퉈 같은 방식을 도입하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많은 전화가 쏟아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의 ARS 투표 독려 전화를 받은 가수 김필 씨의 인스타그램 캡쳐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의 ARS 투표 독려 전화를 받은 가수 김필 씨의 인스타그램 캡쳐

특히 대구에서는 지난 3·9 중구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부터 후보들 상당수가 이를 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허경영이 쏘아올린 전화 한 통'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그러나 그런 효과의 반대급부로 유권자들의 짜증과 피로감이 늘어나며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칫 '선거 공해'로 비춰져 정치 혐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를 하는 사람인 저조차 하루종일 쏟아지는 문자와 전화에 짜증이 나는데, 일반 유권자는 오죽하겠느냐"며 "투표 독려를 명목으로 돌리는 전화 때문에 오히려 투표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마자들도 부담을 호소한다. 전화 한 통 당 30~40원이 들어가는데, 한 번에 10만 통 이상을 하는 데다 문자까지 발송해야 하니 비용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에 출마한 한 인사는 "매번 전화를 돌릴 때마다 수백만 원 이상 비용이 드니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남들이 다 하는 데 안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름과 출마 지역을 알릴 수 있다는 점만 해도 크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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