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하여 글을 쓰고 강연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세요?"라는 질문이다. 힘이 든다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말. 마음을 들고 있기에 힘이 든다. 다시 말해 내려놓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이지만 말처럼 되지 않는 이유는 눈에도 보이지도 않는 뜨거운 감자를 가슴 위에 들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에 그 형체를 가늠할 수 없다. 때론 스치는 걱정임에도 길게 늘어진 그림자만을 보고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걱정을 볼 수만 있다면, 검은 그림자에서 고민을 끄집어내어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고민도 다이어리의 체크리스트처럼 가볍게 여길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하면 고민을 잘 볼 수 있을지요?"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찾을 수도 있다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어두운 밤 홀로 기울이는 소주 한잔에서 어렴풋이 보았다고도 할 것이다. 고민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은 누구의 조언도 효용성이 크지 않고, 취기에 본 어제의 현상, 어쩌면 다음 날 용기없는 환영(幻影)으로 남겨져 있을 모른다.
이런 고민을 직시하고 싶은 이들에게 나는 글을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성스럽게 다이어리에 쓰는 글도 좋고 이면지 위에 날려쓰는 낙서도 좋다. 내 마음에 넘친 글자들을 종이 위에 옮겨 담으면 족하다. 흔히 글이라 하면 유명해지려는 혹은 책을 쓰기 위한 글을 떠올리기 쉽다. 아쉽게도 그런 글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은 그 목표치에 어느 정도 이루었을 때 더 하지 않게 된다. 챔피언이 되고 난 선수가 예전보다는 연습을 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낙서라 할지라도, 좋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마음의 평온도 유지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의 시간
글 쓰는 방법에 대하여는 여러 정형화된 기술들이 인터넷에 소개되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마치 공장과 같이 프로세스를 따라가기만 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한 편의 글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글들은 메마른 장미, 조화처럼 향기가 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남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담을 글이어야 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고, 어제 배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의 시간이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가 있다.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무척이나 크게 보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문제들이 내 손톱 밑 가시로 남아 있을 때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 잘못된 생각이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어 속 시원한 해답까지는 찾지 못한다. 블랙홀과 같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에 궁여지책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맑은 햇살에 다소 진정되었다 느껴져 다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도 슬그머니 또다시 잡생각이 나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때 나는 글을 쓴다. 나를 향한 나의 마음을 글로 적다 보면 또 다른 내가 나의 마음에서 분리됨을 느낀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이 말이다. 가계부를 쓰듯이 마음이 왜 힘든가 그리고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에 생각이 이어져 그 끝을 잡을 수가 없다. 좋은 결정을 위한 고민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이 너무 길거나 마음에 힘이 드는 일이라면 줄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공자는 계문자 삼사이후행(季文子 三思而後行), 재사가의(再斯可矣)라고 하였다. 계문자라는 사람이 늘 세 번의 생각을 하고 움직이니, 공자가 생각은 두 번이면 족하다고 답하였다.
이 말의 뜻은 너무 깊은 생각은 우유부단이란 패턴으로 이어지고, 정작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려움을 표현하는 의미라 나는 해석한다. 막연한 생각이란 안개를 조금씩 걷어 낼 수 있는 작업, 바로 글을 쓰는 일이다. 내 마음을 향한 낙서, 종이와 펜을 꺼내어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한줄 한줄 쓰다 보면 그 글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고, 글 사이의 행간에서 공감과 위로도 받을 수 있다.
최근 '봄이다 살아보자'라는 산문집을 발간한 시인 나태주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시는 세상에 보내는 연애편지고 고백과 호소입니다, 시는 자기감정을 다스리는 거예요. 자기감정을 다스려 스스로 불뚝불뚝 솟아나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고 가라앉혀 주고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것이 시입니다." 시가 좋아서 그냥 쓴다는 그리고 언제나 아마추어 시인 같다는 그가 좋은 글, 공감의 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솔직함이다. 낙서 같은 시라도 마음을 투영시켜주는 그 글 자체가 가지는 힘은 그 어떤 정신과 상담이나 보약보다 좋을 수 있다.
◆솔직한 글이 가장 좋은 글
좋은 글과 나쁜 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솔직한 글이 가장 좋은 글이다. 감정을 담아낸 낙서 같은 일기장 역시 좋은 친구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유일한 친구이자 분신이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아픈 칼날을 상기시켜주는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자신이 품고 있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주는 고마운 친구, 아픔을 내보이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해결과 치유는 시작된 것이다. 너무 예쁘게 쓰려는 노력도, 혹시라도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그런 생각은 필요 없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내 생각을, 버려도 되는 종이 위에 옮겨 적으면 충분하다. 인생은 직선 구간을 달릴 때도 있지만, 때론 비 오는 곡선 구간 길을 달려야 할 때가 온다.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때, 아무도 나의 고민을 들어주려 하지 않아 길게 늘어진 그림자만으로 뒷걸음치고 싶을 때,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우산을 씌워줄 그 무언가를 찾아보자.
세상.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힘쓰지 말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에 고정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 의지하지도 기대하지도 말자. 내 생각이 너와 같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너희의 마음과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자, 그칠 줄 모르는 장마가 다가온다. 내리는 빗소리만큼이나 내 마음의 고민이 크게 들릴 때! 그때 필요한 것은 노트와 펜 한 자루면 족하다.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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