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성인 척 '사귈래?'…남자 3만명 넘어갔다

가짜 계정 ‘사이버 여장남자’ 직원들이 결제 유도, 피해자 3만명
남성 회원이 대화걸거나 사진 등 열람할 때 구매한 ‘포인트’ 사용
여성 회원은 포인트 받아간 현금화, 수익 올려
대구지검 서부지청 주범 3명 구속, 조직원 14명 불구속 기소 

최인상 대구지검 서부지원 인권보호관이 21일 오전 대구지검에서 모바일 소개팅 앱 신종사기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윤기 기자
최인상 대구지검 서부지원 인권보호관이 21일 오전 대구지검에서 모바일 소개팅 앱 신종사기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윤기 기자

남녀가 서로 교제 상대를 찾는 모바일 데이팅 앱에서 매력적인 여성 행세를 하며 회원들에게서 12억원 상당을 챙긴 일당이 구속 기소됐다. 다른 여성의 신상으로 가입한 '사이버 여장남자'에게 3만여명이 놀아났다.

◆체계적 조직범죄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지난 20일 데이팅 앱에서 만남이나 교제 의사가 있는 것처럼 다른 이용자들을 기만해 12억800만원을 챙긴 신종사기 집단을 적발, 사기 및 범죄집단 조직·활동 혐의로 주범 3명을 구속 기소하고, 공범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일당 17명은 2020년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1년 5개월 간 특정 데이팅 앱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 행세를 하며 돈벌이를 했다.

이들이 범행에 활용한 앱은 남성 회원이 유료 결제로 포인트를 충전해야 활동이 가능하다. 남성 회원이 여성 회원에게 대화를 걸 때마다 포인트가 차감되고 여성 회원이 보낸 사진이나 동영상 역시 포인트를 써야 사진이나 동영상도 한시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여성 회원은 남성 회원이 사용한 포인트를 다시 현금화해 돈을 벌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남성 회원들을 기만해 돈을 벌기로 마음 먹은 A씨와 B씨는 사무실까지 차리고 조직원을 고용해 체계적으로 범행 방법을 교육, 수익을 공유했다.

가명 등 허위 인적사항으로 매력적인 여성을 가장한 조직원들은 만남이나 교제 의사가 있는 것으로 행세하며 남성들을 농락했다. 일부 조직원들은 여성이었으나 상당수는 남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남성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조직원들은 회원정보에 선정적인 사진이나 문구를 게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남심'을 공략했고, 모두 3만여명에 달하는 피해자들로부터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검사 '직감'이 진실 밝혀

검찰에 따르면 이 조직적 범행은 수백만원대 소액사기 사건으로 끝날 수 있었으나 담당 검사가 '뭔가 수상하다'는 직감으로 조직적 범죄라는 단서를 발견,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여성 회원 1명이 남성 1명에게서 교제비 등 417만원을 편취한 단순 사기 사건으로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송치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남성들이 범행 수익을 인출하는 폐쇄회로(CC)TV 장면을 포착, 이 여성이 공범관계를 은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수사를 확대했다.

이 여성 조직원은 경찰 수사에서 "남자친구와 그 친구가 현금을 대신 인출해준 것"이라는 취지의 허위 진술로 큰 그림을 감췄으나, 검찰은 범죄수익에 대한 반복적인 현금인출 장면 중 피의자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점을 눈여겨 봤다.

허위진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검찰은 대면조사 과정에서 이 여성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디지털포렌식을 실시했다. 결국 벌금 대납 등을 약속하는 주범 A, B씨의 문자메시지 등을 확인, 범행 전말이 드러났다.

검찰은 범행을 주도한 A, B씨와 직원들을 사장에게 소개해 고용하고 사무실을 관리한 중간관리책 C씨 등 남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앱을 이용해 남성 가입자들과 대화하고 직접적으로 수익을 올린 남성 및 여성 13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 관계자는 "범행에 쓰인 입출금 계좌와 사진 등을 빌려준 여성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도 검토 중"이라며 "데이팅 앱을 운영한 업체는 범행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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