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윤석열 당선인 유퀴즈 출연 과도한 시비, 대선불복으로 느껴진다

미디어비평가 박한명

현대 정치에서 정치인들의 TV쇼 활용은 필수요소다. 특히 대선에 뛰어든 정치인에게 대중적 인지도를 올리고 공약을 알리는데 TV쇼만큼 효과적인 도구는 없다. 2008년 미 대선 유력 후보로 꼽혔던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은 2007년 9월 NBC의 간판 프로그램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해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자신의 출연 장면을 선거 광고로 활용한 장면은 큰 화제가 됐다고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이 쇼에 출연해 출마 선언한 적이 있다. 미 전역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는 결국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다. 힐러리 클린턴 전 상원의원도 코미디언 MC 엘렌 드제너레스가 진행하는 토크쇼 《엘런 디제너러스 쇼》에 출연해 자신을 홍보했다. 공화당을 대표하는 거물 정치인이었던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코미디언 MC 데이비드 레터맨이 진행하는 '레이트 쇼'에서 대권 도전을 선언하기도 하는 등 미 정치인들의 TV쇼 출연은 흔한 일이 됐다.

미국 대통령들이 자신의 정책 홍보에 TV쇼를 적극 활용한 사례도 적지 않다. 예능 정치의 진수를 보여줬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번 TV쇼에 출연했는데 취임 두 달 만에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해 경제 부양책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9월에는 '레이트 쇼'에 출연해 미국민에게 건강보험정책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곤란을 겪던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12월 NBC 심야토크쇼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해 미 경제 현안인 인플레이션, 코로나19 대응, 선거법 개정 등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설명했다. 미 대통령이 대중에 친근한 TV쇼에 출연해 국민에게 정책을 홍보하는 일이 일상화, 관례화된 케이스를 잘 보여준다. 정치 선진국 미국의 이러한 배경을 알면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 출연한 것이 왜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지 이 난리통 광경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비난이 집중되는 이유는 두 가지 핵심 문제로 보인다. 하나는 '인기 토크쇼에 대통령 당선인을 출연시킨 것은 정권의 나팔수 노릇이 아니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밝힌 내용대로 작년 4월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출연을 타진했을 때 '정치인 출연 프로그램 콘셉트와 맞지 않다'고 거절했던 제작진이 윤 당선인을 출연시킨 것은 정치적 외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출연요청 했다'는 탁현민 청와대와 '출연 요청 없었다'는 CJ ENM 측의 거짓말 공방은 별개로 한다.) 첫 번째 이유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정치인이 대선 등 선거에 출마하기 전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우는 흔할뿐더러 현직 대통령이 TV쇼 등 방송에 출연해 국민과 소통에 나선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당장 문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탄핵 대선으로 불리는 2017년 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선이 유력했던 문 대통령은 JTBC '썰전', 채널A '외부자들' SBS '힐링캠프' 등 예능 방송에 잇따라 출연했다. 물론 다른 대선후보들도 예능에 출연해 경우가 다르지만 방송사 제작진 측에서 느낄 무게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위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문 대통령이 공영방송에 출연해 자기 정책 홍보, 자랑으로 시간을 때운 경우도 두 번 있다. 2019년 11월 19일 서울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가 그것이고 대선 100여일 전인 작년 11월 KBS를 통해 방송된 뜬금없는 '국민과의 대화'가 그것이다. 두 번째의 경우 역대 대통령 중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그런 식의 '수상한 대화'를 시도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권의 나팔수' 차원이라면 세금 들여 인기 MC 배철수 까지 섭외해 사회를 맡기고 문 대통령의 '수상한 국민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한 KBS가 윤 당선인이 출연한 tvN보다 훨씬 나팔수 역할에 충실한 것 아닐까.

근거 없는 시비걸기와 여론몰이, 대선불복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현직에서 당시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에 출연한 적이 있다. 청소년 시절 겪은 에피소드, 군 시절 이야기와 같은 개인 신변에 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털어놔 인기를 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현직은 아니었지만 국민예능이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해 이미지 개선 효과를 봤고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하는데 도움을 얻었다. 이렇게 국내외 정치권 어디를 보더라도 정치인과 대통령의 TV쇼 출연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왜 윤 당선인의 출연만 문제가 될까. 문제는 두 번째 이유인 듯 싶다. '유퀴즈' 제작진이 문 대통령의 출연은 정치적 이유로 거절하더니 윤 당선인은 왜 출연시켰냐는 것이다. 유퀴즈 시청자 게시판에 몰려가 항의하고 비난하는 댓글의 다수는 아마도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층이 많을 터인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 확인이 된 것이 없다. 청와대는 제작진에 문 대통령 출연 요청을 했다지만 tvN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청와대와 방송사 사이 오가는 진실공방을 갖고 무관한 윤 당선인이 비난을 뒤집어쓰는 것은 부당하다. 일부 언론은 tvN 모기업 CJ 대표가 검찰 출신이라며 마치 윤 당선인과의 인연 때문에 이중잣대를 댄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지만, 이것 역시 근거가 없다. 대표이사의 이력만으로 그럴싸하다 주장하는 건 합리적 의혹이 아니라 막연한 음모론이다. 필자는 이번 논란에서 청와대가 밝힌 내용이 더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탁 비서관 주장에 의하면 청와대는 지난해 4월과 그 이전에도 '유퀴즈'에 출연 요청을 했다고 한다. 작년 4월경은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떨어져 최악에 가까웠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그 인기에 편승해 지지율을 만회하려던 것은 아니었나.

김부겸 국무총리가 출연을 거절당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 총리는 작년 10월 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유퀴즈' 출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자. 그때는 대장동 게이트 등 한창 의혹이 쏟아지던 이재명 대선후보가 궁지에 몰려 민주당이 플랜B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대체제'로 이낙연과 함께 김부겸 총리 이름이 한창 거론될 때였다. 코로나19 확산이 그때만 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김 총리는 왜 하필 그때 유퀴즈 출연을 검토했었나. 유퀴즈 출연 타진에 정치적 의도는 단 1%도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나. 문 대통령이나 김 총리나 유퀴즈에 출연을 타진했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였고 출연했다면 언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출연한 윤 당선인과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출연을 타진한 문 대통령 청와대와 김 총리 중 제작진 입장에선 어느 쪽이 부담스러웠겠나. 어느 쪽의 요청이 더 외압처럼 다가왔겠나.

탁 비서관이 윤 당선인의 유퀴즈 출연 문제를 갖고 마치 정치적 외압이 있었던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선동이다. tvN 측이 비록 '프로그램 콘셉트가 정치인 출연과 맞지 않다'는 말로 청와대 요청을 거절했을지라도, 그런 궁색한 표현을 동원한 거절이야말로 제작진 입장에선 외압에 대한 완곡한 저항의 표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윤 당선인의 이번 유퀴즈 출연이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탁 비서관 스스로 공개한 문 대통령 청와대의 출연요청의 부적절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해프닝에 대한 필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윤 당선인의 출연은 문제가 될 수 없다. 탁 비서관과 CJ 측의 거짓말 공방은 서로 간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일방적인 주장으로 윤 당선인 측의 외압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또 다른 선동에 불과하니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탁 비서관의 그런 태도가 윤 당선인 비난으로 도배된 시청자 게시판이 순수하기보다 계획된 '양념질'로 보이게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과 소통하려 예능에 출연한 것을 갖고 근거도 없이 과도한 시비를 거는 것은 대선불복에 다름 아니다.

미디어비평가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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