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콤달콤 김영호의 과학이야기] 내 안의 타이머 생체시계의 숨겨진 파워

건강과 질병치료에도 영향…복약 시간 맞추면 더욱 효과적
식물·동물·박테리아에도 있어…다양한 분야에 활용 기대

'꼬로록~ ' 배꼽시계가 울리면 점심 시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시계라고 하기에는 그닥 정확하지 않고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런데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생체시계'라는 정확한 시계를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밤에 잠이 오고 아침에 일어나 활동하는 것은 우리 안의 타이머인 생체시계 덕분이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에 갔을 때 시차 때문에 며칠 고생하는 것도 생체시계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곳 현지의 낮밤의 시간과 내 안의 생체시계의 시간이 서로 엇갈려서 낮에 졸리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날을 일주일 이상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체시계에 관한 최근 연구결과는 단순히 하루라는 주기를 인식하는 기능을 넘어서 우리의 건강유지와 질병치료에 다양한 연관성을 가지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안에서 재깍재깍 움직이는 생체시계에 어떤 놀라운 힘이 담겨 있는지.

◆식후 30분? 식사 직후?

'식후 30분에 약을 드세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왜 식후 30분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삼성서울병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식사를 하고난 후에 약을 먹으면 음식물이 소화관 점막을 보호해서 약으로 인한 위점막의 자극을 감소시켜준다.

다음으로, 식사 후에 위산과 소화효소가 분비되기 때문에 약의 대사와 흡수를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일정 시간 후에 약을 먹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는 것과 약을 먹는 것을 연결시켜서 잘 기억해서 약 먹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밥 먹고 30분을 기다렸다가 약을 먹으려다가 깜빡 잊고 약을 먹지 않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서울대병원은 '식후 30분'이 아니라 '식사 직후'에 바로 약을 먹도록 약물 복용법을 2017년에 바꿨다. 이후 여러 병원들이 밥 먹고 바로 약을 먹는 것으로 복약 기준을 바꿔가고 있다. 사실 의료계에서는 '식후 30분'이나 '식사 직후'에 약을 먹는 것의 약효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약의 종류에 따라 식사 전이나 취침 전에 먹어야 하는 약도 있으므로 약의 종류와 복약기준을 확인하고 먹는 것이 좋다.

◆시간치료법, 생체시계에 맞춰 약 먹기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환자가 약을 먹는 것은 몸 속에 약의 주요성분을 일정한 농도로 유지시켜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 연구는 농도 유지뿐만 아니라 생체시계에 맞춰서 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가 약을 먹거나 약물치료를 하루 중 특정 시간에 맞춰서 하는 것을 시간치료법(Chronotherapy)이라 하는데 이것은 우리 안의 생체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18년 네이처 학술지는 난소암, 유방암, 비소세포폐암 등의 치료에서 시간치료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전연구결과가 미국에서 보고되었다는 내용을 실었다. 또한 속쓰림 치료제를 포함한 많은 약이 하루 중 특정 시간에 복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최근 연구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그리고 환자가 아침이 아니라 잠자기 전에 약을 복용했을 경우에 심장마비와 뇌졸중 및 다른 심혈관질환이 67% 감소하였다는 연구결과가 2018년에 보고되기도 했다.

우리 몸의 면역계와 생체시계의 관계도 차츰 밝혀지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과 독일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 공동연구팀은 인체 면역계가 생체시계에 의해 제어된다는 것을 밝혀내어 네이처 이뮤놀로지 학술지에 2021년 10월에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인체 면역 기능이 활성화되기 직전의 휴식기에 최고로 높았는데 이 때가 아침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우리 몸의 면역상태를 살펴서 가장 효과적인 시간대에 백신 접종이나 항암치료를 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체시계에 맞춰 약물을 복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기술은 아직 연구단계에 있다. 암의 종류와 환자 개인에 따라 약물 복용 시간대가 다를 수 있고 환자의 연령대에 따라서도 생체시계가 달라서 차이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보다 자세한 연구가 진행된 후에 각 환자 개인에 맞는 맞춤 약물 복용 시간이 적용될 것이다.

◆내 안의 생체시계와 유전자

우리 몸속에는 신체의 생체리듬을 주관하는 생물학적 시계인 '생체시계(Circadian clock)'가 있다. 이 생체시계는 24시간 주기에 맞춰서 살아가도록 작동하며 우리 몸의 생리작용과 행동 및 노화 등을 조절한다.

생체시계의 핵심 원리를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은 미국 메인대학 제프리 홀 교수,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마이클 로스배시 교수, 미국 록펠러대학 마이클 영 교수가 201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들은 1980년대에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생체시계를 작동하게 하는 주요 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하였다.

생체시계와 관련된 유전자에는 CLK, TIM, BMAL1, PER 등이 있는데 이 유전자들은 뇌를 비롯하여 심장, 신장, 폐 등 여러 장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 유전자가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데 이로인해 우리 몸의 생리현상과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코르티솔'과 '멜라토닌' 호르몬인데 코로티솔은 아침에 빛을 받아 분비량이 최고가 되고 멜라토닌은 어두운 밤이 되면 분비되어 수면을 유도한다. 이외에도 여러 호르몬들이 생체시계에 영향을 받아 분비된다.

역사적으로 생체시계는 18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장 자크 도르투 드 메랑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천문학자였는데 식물 미모사를 가지고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미모사는 낮에 햇빛을 향해 잎을 활짝 펼치지만 밤에는 잎을 오무려서 닫아버린다. 그는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 미모사를 며칠 동안 두면서 관찰했는데 미모사는 여전히 일정한 주기로 잎을 펼쳤다가 닫는 운동을 계속하는 것을 발견했다.

즉 미모사가 빛이 없어도 24시간 주기의 생물학적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또한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이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으며 카이A, 카이B, 카이C 등 세 가지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체시계가 24시간 주기로 작동한다는 것이 2005년 일본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그리고 2021년에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박테리아인 고쵸균이라는 박테리아가 일주기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독일, 영국, 덴마크 등 공동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이처럼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과 동물, 심지어 박테리아까지도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발견은 향후 건강관리, 질병치료, 농작물 재배, 식품가공 등 다양한 분야에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호 대전과학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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