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영 작가가 '나의 해방일지'로 돌아왔다. '나의 아저씨' 이후 4년 만이다. '나의 아저씨'가 '편안함에 이르는 길'에 대한 화두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해방'을 화두로 들고 왔다. 과연 '나의 해방일지'는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것일까.
◆변방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로 출근했다 돌아오는 수도권에 집이 있는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출퇴근길이 너무 고되고, 길거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걸. 그래서 직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 빼고 그 중간에 여가를 갖는다거나, 혹은 친한 지인과 마음 놓고 술자리를 갖는 일조차 부담이라는 걸.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바로 이 경기도민으로 상징되는 변방에서 살아가는 가족이 겪는 고충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변방의 환경 속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삼남매, 창희(이민기), 기정(이엘), 미정(김지원)이 겪는 일은 그들에게는 눈물 나는 현실이지만, 이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회식자리를 즐길 때도 지하철 시간을 맞추려 먼저 일어나야 하고, 지하철이 끊긴 시간이면 삼남매가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강남역에서 만나 같이 집으로 들어간다. 하루의 대부분을 출퇴근으로 보내는 것 같다는 푸념이나, 집에 도착해서는 피곤에 절어 쓰러져버리는 모습, 게다가 집이 멀어 경기 북쪽에 사는 사람과는 데이트도 하기 힘든 상황은 마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낮 동안 양복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오피스에서 일을 했던 창희가 집에 도착해서는 마당에서부터 웃통을 훌훌 벗어버리고 땀에 전 몸에 물을 끼얹는 모습이나, 그래도 휴식을 취해야할 주말에 가족 모두가 동원되어 파 농사를 짓는 광경도 그렇다. 그것은 도시인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전원생활'의 낭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광경으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다. 드라마가 대사를 통해 전하듯, 이러한 변방의 삶은 여러모로 중심에서 소외된 '흰자의 삶'이다. 막연히 계란 노른자를 지향하며 사는 현실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흰자의 삶.
이렇게 보면 '나의 해방일지'는 마치 경기도민으로 대변되는 변두리 삶의 고충을 풍자한 시트콤 같은 드라마가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러한 변두리의 삶을 좀 더 보편적인 우리의 삶으로 은유한다. 서울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자본화된 세상이 만들어내는 위계와 그 안에서의 소외는 여전하다. 창희는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며 점주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수시로 전화해 심지어 한 시간씩 통화하는 일들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기정은 얼마나 유용한지 알 수 없는 숫자들을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리서치 회사를 다니며 살아간다. 미정은 변방에 살아 현실적으로 시간을 낼 수 없는 동호회 활동을 '행복지원센터'라는 부서까지 만들어 강제하는 회사를 다닌다.
그런데 그 회사에 다니는 이들 역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큰 돈 벌 일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로또 하나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으로 행복을 가장하는 삶, 일 년 내내 혹사당하면서도 잠깐 휴가 때 어딜 갈까 고민하는 낙으로 그 일 년을 버텨내는 삶, 그래도 회사가 지원하는 동호회 활동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착각하는 삶…. '나의 해방일지'는 변방에 사는 삼남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딘가에 너무나 오래도록 묶여있고 갇혀 있어 날갯짓 하는 걸 잊어버린 그런 존재라는 걸 확인시켜 준다.
◆행복을 가장하는 사회에 풍자
그런데 행복을 가장한다고 진짜 행복해질까. 불행하지 않은 건 과연 행복한 걸까. 드라마는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는 바다. 갇힌 거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지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미정의 이 진술은 우리가 어디에 갇혀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전원생활 같은 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가능한 판타지다. 실제 그곳은 머리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땡볕 아래서 숨이 턱턱 막혀도 일을 해야 하고, 애써 싱크대를 설치해주고도 월세보다 그 비용이 더 비싸다며 돈을 주지 않는 의뢰인에게 사정사정해야 하는 곳이다. TV가 판타지로 보여주는 것들로 잠시 잠깐 지친 하루를 위로하지만, 실제로는 바뀌는 게 하나도 없는 삶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드라마는 꼬집는다.
이렇게 소외된 지역에서 살아가는 미정의 집에서 밭일과 싱크대 공장 일을 도와주며 살아가는 구씨(손석구)는 마치 현실에서 비껴난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들보다 더 소외된 자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와 하루하루를 술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 의욕도 없어 보이는 이 인물을 통해 미정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결핍을 들여다본다. 구씨의 삶이나 자신의 삶이나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바로 그 동질감에서, 이렇게 살다가는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절망감에 구씨에게 다가가 "날 추앙해요"라고 요청한다.
그건 사랑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자신을 응원해달라는 요구다. 그러면서 그렇게 서로를 추앙하다 보면 계절이 지나 봄이 올 때 그들은 달라져 있을 거라고 미정은 말한다. 가짜 행복과 가짜 위로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욕망을 미정은 소망한다. "어디에 갇힌 건지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는 거지 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요."
◆박해영 작가와 김석윤 감독의 도전
사실 '나의 해방일지'는 대중적일 수는 없는 작품이다. 그건 단 하나의 클리셰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그렇다. 클리셰는 식상하긴 해도 보편적인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코드이기도 하다. 그러니 클리셰가 없다는 건 낯설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2회 만에 미정의 입을 통해 "날 추앙해요"라는 대사를 담아 넣었다는 점에서부터, 만만찮은 박해영 작가의 남다른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추앙'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를 갈라놓았다. 그 단어가 신선하다는 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작품에 더욱 빠져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진입장벽처럼 느껴졌던 것. 실제로 '나의 해방일지'는 그 낯선 지대에 발을 들여놓는 이들에게는 한없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공감과 통쾌함 같은 다양한 경험들을 제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뜬금포' 같은 이질감만을 느끼게 해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의 해방일지'는 빛난다. 그저 적당한 클리셰와 사이다 전개를 더해 두루뭉술한 한 때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드라마들 속에서 그것이 '가짜 행복'일 수 있다고 홀로 외치고 있는 듯한 작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중성에 휘둘리지 않고 박해영 작가가 이렇게 끝까지 하고픈 이야기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그걸 마음껏 허용한 김석윤 감독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인다. 각각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나의 아저씨'를 쓰고, '눈이 부시게'를 연출했던 작가와 감독이 후속작에 대해 얼마나 큰 부담을 가졌을지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런 부담 속에서도 이들은 적당한 성적이 아닌, 하고픈 걸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실험과 도전을 선택했다. 시청률은 낮을 수 있지만, 이러한 선택 자체가 갖는 성취는 결코 적다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작품 자체가 해방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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