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군복인 철릭 입고 부채 든 19세기 초 무당의 모습

미술사 연구자

신윤복(?-?),
신윤복(?-?), '무녀신무(巫女神舞)', 종이에 채색, 28.2×35.2㎝,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신윤복이 무속의례 장면을 그린 '무녀신무'다. 무녀는 갓을 쓰고 주황색 철릭을 입었다. 철릭의(裰翼衣)는 군복의 일종으로, 무당이 철릭을 입는다는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 기록을 그림으로 확인시켜준다.

왼손에 든 커다란 부채의 그림은 금강전도류의 채색 산수화로 보인다. 홍석모(1781~1857)가 우리나라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 당시 접부채를 얻으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많이 그리고, 접부채를 광대나 무당이 손에 든다고 한 기록과 일치한다. 무당부채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그림이지만 무신도(巫神圖)가 그려지는 지금과는 그림이 다르다.

굿의 의뢰자는 흰쌀이 소복하게 담긴 소반을 앞에 두고 두 손 모아 빌고 있다.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에 쌀을 소반에 쌓아놓고 그 쌀을 조금 집어서 던진 다음 입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손가락 끝으로 던진 쌀을 헤아려 길흉을 점치는 무녀들의 쌀점이 있다고 했는데, 이 소반의 쌀이 그런 미복(米卜)의 용도일 것 같다.

신윤복의 '무녀신무'는 19세기 초의 굿이 여성들만 참석하는 제의였음도 알려준다. 빌고 있는 여성 뒤로 며느리와 딸 등 가족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이 있고 남성은 반주자와 담 밖의 구경꾼 뿐이다. 장옷을 머리에 걸친 새댁이 고개를 살짝 돌려 담 밖의 젊은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은 신윤복이 이 그림에 심어놓은 숨은 재미다.

무업 종사자를 성별에 따라 여무, 남무로 나누기도 하지만 한자 무(巫)는 원래 여자무당이고 남자무당은 격(覡)이다. 대부분의 종교와 달리 여성이 제의를 주관하는 주제자(主祭者)가 된 것을 '성호사설'에서 "예전에는 격(覡)도 있고 무(巫)도 있었으나 지금은 여무만 있는데 안팎을 출입하며 친근하게 이득을 취하는 일에 남자가 여자만 못하기 때문에 남무가 없어졌다"고 했다. 여무가 남무를 제치고 무리를 이루게 되자 무격(巫覡)이 아니라 '여자 무당의 무리'인 무당(巫黨)이나 무속, 무업 등 무(巫)가 널리 쓰이게 된다.

무녀가 군복인 철릭을 입은 것은 악한 신령과는 싸워야하기 때문일 것이고, 부채는 부채질로 더위를 물리치고 해충을 쫓아내듯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다. '무녀신무'는 생생한 풍속화 작품일 뿐 아니라 미술, 음악, 복식, 건축 등 문화사적 기록물이며, 이 땅에서 이어졌던 삶의 역사를 한 장면으로 증거하는 생활사, 사회사, 여성사, 종교사의 자료이기도 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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