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점곤(신도물산 대표) 씨의 어머니 고 금명수 씨

고교생 때도 봉화 산중 독가촌 호롱불 생활…숲한 고생하며 8남매 키우셨지요

김점곤(사진 오른쪽) 씨가 어머니 고 금명수 씨(사진 왼쪽)와 함께 식사하던 어느 날의 모습. 가족 제공.
김점곤(사진 오른쪽) 씨가 어머니 고 금명수 씨(사진 왼쪽)와 함께 식사하던 어느 날의 모습. 가족 제공.
김점곤 씨의 어머니 고 금명수 씨. 가족 제공.
김점곤 씨의 어머니 고 금명수 씨. 가족 제공.

저희 어머니는 안동에서 태어나 우리집으로 시집오셨다고 합니다. 아주 옛날에 무학으로 배우지도 못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빈 손으로 시집오셔서 숱한 고생 많이 하시고 지난 1월 93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꽃다운 18살에 시집와서 저희 8남매를 낳아 키우시고 제대로 먹을것도 못 먹고 고생을 많이 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저희집은 봉화에 있는 산중 외딴집으로 골짜기에서 독가촌으로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전깃불이 아닌 호롱불로 생활하던 곳이었습니다. 교통수단은 우마차와 자전거 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일제시대와 6·25 사변을 겪으면서 혼돈의 시기를 지내셨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8남매를 키우면서 많은 식구들 속 바람 잘 날 없이 매일 힘든 생활을 하셨으며 봄이면 산나물을 캐서 시장에 내다 팔고, 여름이면 산에 흔한 칡덤불을 걷어와서 가마솥에 찐 다음 다시 거름통에 며칠을 묻어두었다가 꺼낸 뒤 껍질을 벗겨냅니다. 그 껍질을 물에 다시 깨끗하게 씻어 하얗게 되면 이걸 다시 태양볕에 말려서 삼베같이 만든 다음 시장에 내다 파셨습니다. 가을에는 도토리와 송이버섯을 캐서 팔고 겨울이면 산에 가서 땔나무를 구해 파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생을 하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1학년때 신장염에 걸려서 약 2년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일같이 흰 밥에 누룽지만 주셨습니다. 소금기만 들어가면 몸이 퉁퉁 불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께서 저희 8남매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생각해 볼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매일을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키우지 않으셨을까요.

제가 초등학생 때 갑자기 저녁부터 많이 아팠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찌할 줄 몰라 산을 서너 개 넘어 약을 사오셨지요. 깊은 산 속을 지날 때 늑대 소리, 오소리 소리에 무서우셨을 텐데, 어머니는 오로지 아들 죽지 말라고 약을 가져 오셨습니다. 정말 어머니는 세상에 무서울 것 없이 강하셨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농사 짓고 칡뿌리도 캐어다 팔다가 21살에 군대를 갔고 24살에 지금의 집사람과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저희 부부가 장사하는 동안 쌍둥이들은 어머니께 맡겼었습니다. 변변한 집이 없다보니 가게에서 생활했었지만 어머니는 손자를 건강하게 키워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힘든 일만 하시다 돌아가셨지만 저를 많이 챙겨주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파도 별 말씀 안 하셨고, 아들이 걱정할까봐 속으로만 끙끙 앓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따뜻한 물만 마시며 버티시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몇 달은 너무 아프셔서 집 근처 병원에 모셨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면회도 힘들었지요.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어머니가 너무 아프신 건 아닌지 걱정돼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간호사가 "면회는 안 되지만 뒷문으로 오셔서 노크하시면 문 열어드릴테니 잠깐 들어오셔서 어머니 보고 가세요"라고 해서 잠깐 뵈었던 적이 있었지요. 너무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손을 잡고 한없이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영영 이별을 하게 됐습니다. 제 생에서 제일 슬픈 날을 보내며 장례기간 동안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효도도 못하고 저 세상에 보낸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를 볼 때마다 "우리 아들이 최고다, 쌍둥이 손자도 최고다"라고 하셨던 어머니. 생활이 넉넉하진 않지만 30년 째 장학 사업도 하고 그 때문에 아너소사이어티회원이 됐던 것도 자랑스러워하셨죠.

따뜻한 봄날이 됐지만 어머니를 볼 수 없는 이 봄날이 저는 너무 슬픕니다. 어머니, 너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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