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린 집과 사람, 자연의 풍경들. 옆으로 누워버린 벽돌집과 거꾸로 놓여진 창문들. 이해하기 힘든 구성이지만 그러한 불균형이 그림 속에서 예상치 못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생명력을 자아낸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지닌 이 그림들은 여든여섯의 구순기 작가가 그린 것이다.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9살에 한국으로 와 줄곧 대구와 구미에서 살아왔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말도 잃어가고 조금씩 침울해져가던 지난해, 그의 딸 김계희 작가(일러스트레이터)가 구 작가에게 붓을 쥐어줬다. 제대로 된 스케치도, 색을 섞는 법도 잘 몰랐던 그였지만 비뚤고 서툰 선으로 단숨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김 작가는 "60cm의 옻칠이 벗겨진 작은 밥상이 어머니의 책상이다. 물컵 크기의 작은 물통과 몇 개의 붓이 도구의 전부"라며 "주로 내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데, 수 백 개의 말도 안되는 초록 점을 찍어놓고 그래도 오리가 제일 잘 그려졌다고 하거나, 사진을 거꾸로 놓은 채 거꾸로 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에게 그림을 시작하게 한 것은 청력이 약해진 어머니의 우울함을 달래려는 이유였지만, 내가 수 십 년이 걸려도 닿지 못한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나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재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정기전에 일반인으로 참가해 지역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하기도 했다. 시민과 예술가가 머리를 맞대고 사회, 환경 등에 대한 내용을 작품으로 펼쳐보이는 협업 특별전이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 관계자는 "팔순이 넘은 분께서 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함을 미술로 치유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며 "당시 그가 전시한 그림을 보고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렸다는 분도 있었고, 그림이 전부 따뜻한 느낌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는 분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작가는 어머니 구 작가의 그림들을 모아 2일부터 8일까지 보나갤러리(대구 중구 동덕로8길 47)에서 '어머니의 그림'전을 연다. 전시된 60여 점의 그림은 여든다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그림을 시작한 구 작가가 1년 남짓 그린 작품들이다.
김 작가는 "그 시절의 많은 어머니처럼 가난해 배우지 못하고 오로지 어머니의 역할로만 살아야했던 삶이 이토록 먼 시간을 돌아 강하고 순결한 회화로 나타났다"며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일들을 담아놓고자 전시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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