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 칼럼] ‘위장 탈당’ 불법, 헌재가 심판하라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나의 상상력 부족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자진 탈당, 무소속이라 자임하는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앞서 민주당이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민주당 박성준 의원과 맞바꾸어 기재위에서 법사위로 사·보임한 것부터 일종의 꼼수였다.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의 법사위 통과를 위해 미리 포석을 깔아 둔 것이다. 민주당 출신 양 의원이 당연히 민주당 안에 찬성함으로써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켜 줄 것을 기대한 사보임이었다. "양심상 검수완박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는 양 의원의 발언은 그런 기대를 배반한 폭탄선언이었다.

"양향자 대책도 준비돼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있었을 때 당연히 김홍걸·윤미향 등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을 또 한 번의 사보임을 통해 안건조정위에 투입할 가능성을 생각했다.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민 의원의 탈당과 무소속 자임은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고 그런 일을 꿈에도 생각 못 한 나의 상상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과 민 의원의 포석대로 검수완박 법안 처리는 법사위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민주당 소속 박광온 법사위원장이 무소속 민형배 의원을 위원으로 선임한 덕분이다. 법사위를 통과한 검찰청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것은 4월 27일. 민주당이 임시국회 회기를 1일로 하는 회기 수정안을 통과시킨 후였다.

임시회를 하루로 하여 무제한 토론을 무력화시키고, 27일 임시국회 회의 중 다음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해 4월 30일 본회의를 공고하고, 30일 또다시 하루짜리 본회의로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형사소송법 개정안 상정 후 무제한 토론을 무력화시키고, 회의 중 다시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하여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5월 3일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국회 의결 후 당일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공포하기 위해 국무회의 시간을 늦추었다는 얘기까지 있다. 아무리 법에 따른 절차를 밟았다 해도 꼼수에 꼼수를 거듭하는 것일 뿐, 정당한 절차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토론 없이 밀어붙이면서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무척 모순적이라고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이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피력한 말이다.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토론 없이 밀어붙이면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무척 모순적이라고 느껴진다." 건국 이래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는 일은 청와대 이전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한 국가의 백년대계이다.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없이 밀어붙이면서 국민을 위한 검찰 개혁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월 25일 법안심사소위 회의에서 개정 법안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야당과 검찰 관계자들에게 이수진 의원은 "헌법재판소로 가서 판단받으시라"고 말했다.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횡포를 보면서 어떤 대응책도 마땅치 않다는 현실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다수의 횡포를 지적하고 법률의 위헌성을 바로잡을 권한을 가진 기관은 헌재가 유일하다. 국민의힘은 이미 '검수완박' 입법 강행에 대해 헌재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바 있다. 법률안 내용의 위헌성 판단은 시일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위장 탈당'은 차원이 다르다. "조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소속 의원 수가 가장 많은 교섭단체(제1교섭단체)에 속하는 조정위원의 수와 제1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조정위원의 수를 같게 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명백한 위법행위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으로 법안을 제안한 의원이 무소속 의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법안 심사에 임한다? 내용적으로는 물론 형식적인 적법 절차를 위배한 것이다. 이런 경우까지도 국회 내부의 의사 절차라는 이유로 재량을 인정한다면 헌재의 존재 이유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수를 차지하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제동도 걸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질식 사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위해 헌재가 필요한 기관인지 국민에 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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