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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포스코는 국민 기업이 아닐 수 없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국민 가수는 조용필이고 국민 배우는 안성기다. 유재석은 국민 MC이고 이승엽은 국민 타자다. 국민 기업도 있다. 포스코(POSCO)다. 대한민국 산업화 역사를 함께 써 온 포스코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줬다.

그런데 최근 들어 포스코가 이 타이틀을 스스로 부정하고 나섰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6일 사내 메일을 통해 "포스코그룹이 국민 기업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극복해야 할 프레임"이라는 주장을 폈다. 뜬금없는 포스코의 국민 기업 부정이 황당하고도 어이없다. 영예로운 타이틀을 포스코가 걷어차 버리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사인가.

포스코에 국민 기업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포스코는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지어졌다. 겨울바람이 매섭던 1970년 벽두 착공식에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은 입김을 토했다. "포항제철은 조상의 핏값(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국민 기업' 이름은 아무 데나 붙지 않는다. 포스코가 국민 기업인 것은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 기대가 크다는 점과 통한다. 그런데 포스코가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하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포스코 측은 제철소 건설에 사용된 유상 청구권 자금의 원금과 이자 상환이 1996년 완료됐으니 국민 기업으로 부를 수 없다고 했다. 포스코에 대한 정부의 보호와 지원도 1986년 종료됐기에 그간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게 없다는 주장도 폈다.

이럴 때 쓰자고 있는 사자성어가 있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어렵던 시절 자식 하나 잘 키워 놨더니 키워 준 빚 다 갚았다며 스스로 호적 파내려는 격이다. 포스코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의 포스코가 있기까지는 국민들이 함께 있었다.

특히 포스코 태동지인 포항 시민들은 할 말이 많다. 지금도 포항 남구 쪽 주택들의 창틀에는 쇳가루 자국이 가득하다. 툇마루에서 쓸어낸 검은 먼지는 자석에 달라붙는다. 포항 사람들은 제철소에서 나오는 환경오염을 감내하면서까지 포스코를 '우리 기업'이라고 아껴 왔다. 대구경북민들로서도 지역 내에 유일한 대기업 포스코에 대해 가진 마음이 각별하다.

지난해 말 포스코 본사를 서울에 둔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난리가 났다. 들끓는 지역 여론에 화들짝 놀란 정치권이 뒤늦게 나서고 대선 주자들도 가세하면서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 건은 없던 일이 됐다. 지주사 본사 서울 설립 드라이브를 걸었던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이 과정에서 국민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감정을 가졌을 수 있다. "국민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간섭과 요구는 없어져야 한다"는 포스코 사내 메일 내용에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포스코 입장도 이해는 간다. 포스코는 정권 교체 시기마다 수뇌부 입지를 놓고 외풍에 시달렸다. 포스코 회장 자리가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포스코가 국민 기업이 아닐 수는 없다. 지금도 포스코는 신입 사원 연수에서 '제철보국'(製鐵報國·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이라는 말을 가르친다고 한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한결같아야 멋있다. 고생할 때는 국민 기업이었는데 먹고살 만해지니까 사기업임을 자처하면 욕먹기 딱 좋다. 포스코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포스코에 가해지는 부당한 간섭도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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