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인간, 질병, 사회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장면 하나.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거리두기 인원제한이 풀린 후 카페, 식당, 주점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쳐흐른다. 웃음소리가 가게를 넘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장면 둘. 오후 외래를 앞두고 식당을 가던 중 휴대폰이 급하게 울린다. "교수님, 급성심근경색증 환자입니다.", "시술 준비하세요." 이내 발길을 돌려 시술실로 향한다. 환자는 50대 중반. 심장 혈관이 꽉 막혔는데 쉽게 열리지 않는다. "언제부터 가슴이 아팠어요?", "사실 어제저녁 술 마시고 나서 바로 통증이 있었는데 밤새 참고 출근했다가 도저히 안돼서 점심때 잠깐 왔습니다." 어려운 시술이었다. 간만에 수술복이 땀에 완전히 젖었다. 이 두 장면은 서로 관련성이 있을까?

자연과 더불어 생활해온 인류에게서 기후와 질병에 대한 관심은 그 역사가 길다. 기원전 430년.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 "공기, 물, 그리고 장소"에서 특정한 기후는 질병의 발생과 연관이 있다고 기술했다. 특히, 급성 심근경색증은 겨울철 대표적인 불청객이다. 하지만, 겨울을 지나 봄 치고도 고온현상을 보이고 있는 지금 잠잠하던 심근경색증 환자가 갑자기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봉쇄,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지난 3년간 코로나 대유행 시기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단어들이다. 이 시기 코로나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안타까운 사망자도 많았다. 특히, 3년 전 최소한의 마스크도 없이 처음으로 코로나 대유행을 감당해야 했던 대구의 사망률 통계를 보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외에 추가적인 사망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대구 지역의 급성심정지 통계를 보면 가정에서 사망한 환자 수가 다른 시기에 비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급성심근경색증이나 급성뇌졸중과 같은 급성기 심뇌혈관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수가 이전 시기 같은 기간에 비해 현저히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이전 같으면 응급실 방문을 했어야 할 급성기 심뇌혈관질환 환자들이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응급실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대기하다가 급성심정지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나 유럽의 다수의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하지만, 마스크, 사회적 거리두기, 백신의 사용이 일반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전에 비해 심근경색증 환자가 줄어든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대유행 초기와 달리 실제로 심근경색증 환자의 수 자체가 감소했을 가능성도 있다. 우선, 코로나 유행 초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동량이 감소하면서 체중이 증가하고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같은 건강지표가 나빠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은 대표적인 심근경색증의 위험인자이다. 하지만, 사회적 봉쇄를 시행했던 유럽의 통계를 보면 체중은 오히려 감소하고 혈압, 당뇨, 콜레스테롤 수치는 변화 없거나 오히려 조절이 더 잘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코로나로 인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그동안 회의, 모임 등의 사회적 활동으로 운동시간과 수면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가, 비대면 회의로 개인 시간이 증가하면서 술, 담배를 줄이고 가정식을 만들어 먹거나 주변을 산책하는 등 건강한 생활행태가 증가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코로나 대유행을 지나 일상회복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시사점을 준다. 일상 회복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얼마나 해 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직장 복귀, 대면 회의, 잦은 모임으로 인해 줄어든 개인의 시간과 인간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일상회복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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