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우물 안의 개구리, 센바츠루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지난 4월 12일 아사히신문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사이타마현 장애인 취업지원센터 회원들이 종이학을 접어서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내 주변에서는 "일본 사람들은 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러시아 침공으로 생지옥 속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종이학을 보낸다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고 반응했다.

이런 반응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다. 일본 자체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2채널'의 창립자 니시무라 히로유키가 자신의 트위터에 "종이학 같은 '쓸데없는 짓을 하고는 좋은 일을 했다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멘탈리스트 DaiGo도 '미친 짓'이라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만족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이에 대해서 "우크라이나에 종이학을 보내는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짓밟지 말라"는 말들도 있는데, "종이학에서 '감사'를 느끼는 것은 일본 독자의 문화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황당할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친절은 민폐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렇다. DaiGo의 말 그대로 '일본 독자의 문화' 이해 없이는 '종이학'을 논할 수 없다. 여기서 '종이학'이란 '센바츠루'(千羽鶴), 이른바 천 마리의 종이학을 말한다.

센바츠루는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 천 마리를 실로 이어서 묶음을 만든 것이다. '천'은 정확한 숫자를 뜻하기보다는 '많은 수'를 의미한다. 상서로운 새인 '학'이 '천 마리'라니 길한 조짐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예로부터 '기원'의 마음을 담아 사찰에 봉납했다. 지금은 축복, 행복, 재난에 대한 위로, 병문안 등의 목적으로 선물을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많은 이들이 피폭되었는데, 당시 2세였던 사사키 사다코도 있었다. 건강하게 잘 성장하는가 했는데, 10년 후 원자병으로 투병을 하게 된다. 이때 나고야의 고등학생으로부터 종이학을 선물받았다. 병원에서는 그녀만이 아니라 많은 환자가 종이학을 천 마리 접으면 건강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종이학을 접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는 그녀의 동상이 있고, 종이학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아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지금도 매년 10t에 이르는 종이학을 보내고 있다.

2018년 8월 12일은 일본항공 점보기 추락 사고 3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520명이 희생된 군마현 현장에는 유족들이 모여 산길을 올라 희생자의 묘비 앞에서 합장했다. 이날 72세의 할머니는 천 마리의 종이학을 들고 산에 올랐다. 사고 당시 16세, 14세였던 두 딸을 기억하면서 15년 동안 접은 종이학이었다. "가장 무서울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종이학을 천 마리 접으면 딸들이 고생했다면서 꿈에라도 나와 줄지 모른다"는 노모의 바람이 이루어졌는지 모르나, 묘비 앞에 놓인 종이학은 주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종이학은 일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왔다. 일본 정부는 정부 전용기로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이송하고 생활비 등을 지원했고, 미국 등 서방국과 함께 러시아 제재에도 적극 동참했다. 러시아 외교관까지 추방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식 SNS에 러시아 비판 영상을 게재하며 파시즘을 상징하는 인물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함께 일본 쇼와 천황 사진을 올렸다가 일본 측 항의를 받고 뒤늦게 삭제했다.

그리고 4월 21일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어려운 시기에 지원해준 파트너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는데, 지원국 31개국 명단 속에 일본은 제외되었다. 이에 일본은 분노했고 "더 이상 지원을 끊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일본의 외교력, 문제점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여기서 일본의 '종이학 문화'를 말하고 싶다. 주는 이가 아니라 받는 이의 입장을 더 생각하는 일본이 되기를 바란다.

문화부 jeb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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