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 일손을 돕겠노라 팔을 걷어붙였다. 농촌 일손 부족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막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고추 모종 심는 작업에 모래를 옮겨 오는 데도 곧장 지친다. 농경사회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옛사람들이 봤다면 백면서생이 따로 없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육(金堉)은 현장형 관리였다. 벼슬을 하지 않던 때, 이른 새벽 일어나 나무를 하고 숯을 구워 장에 팔았다. 민초들의 생활상을 체득했기에 시대정신은 명확했다. 백성을 괴롭히는 제도를 혁파하자는 것이었다. 세금을 쌀로 통일해 내게 하는 대동법 시행이 생을 건 과업인 이유였다.
멀쩡한 지식인들을 현장으로 내몰아 역효과만 낸 경우도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하방'(下放)이다. 외과의사도 농촌에서 쟁기질을 해야 했으니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와 거리가 멀었다. 인민들도 우수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 당대를 풍자한 다이 시지에(戴思杰)의 자전적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하방'이 얼마나 허울뿐인 구호였는지, 소모적인 정치 행위였는지 잘 보여 준다.
'원수가 있다면 장관으로 추천하라'는 말이 항간에 떠돈다. 후보자들의 과거가 낱낱이 공개되고 있어서다. 오랜 원한도 의혹에 섞인다. 의혹과 해명이 진실과 변명으로 호도되기도 한다. 후보자가 배겨 내기 힘든 모멸감이다. 인간적 치욕을 무릅쓰며 오를 자리인지 골백번 회의했을 것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원님, 제 인생이 너무 싸그리 짓밟힌 것 같은 참담한 느낌이 듭니다."
대한민국은 왜 이리 괴멸적일 만큼 인사청문회에 혹독할까. 직무 수행력에 비례하는 걸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후보자 지명을 받고도 고사하는 일이 다반사다. 낙마자가 속출한다.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할란다'에 가까운 자진 하차도 적잖다. 일순위 후보자를 제자리에 앉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후보자 기근 현상까지 나타난다. 여러 인재들이 수치심에 몸서리쳤다.
인사청문회 찬성론자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미래의 후보자들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내로남불의 돌림노래에 불과하지 않은가. 삼고초려해 모셨다는 여당의 찬가를 불협화음으로 폄하하기 바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인사청문회라면 퇴계 이황의 재림이라 해도 도산서원 준공 과정을 따질 것이고, 율곡 이이가 천거된다면 아버지 이원수의 과오를 따져 의혹으로 제기할 거란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뼈 있는 농담이다. 아무 지적이 없으면 외려 의심스러울 정도다. 후보자의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도입 취지는 이미 무색해졌다.
인사청문회를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까. 공명정대하려 노력했던 시기라 평가할까. 불필요한 싸움에 골몰하다 공멸했다 평할까. 추측건대 합일의 노력으로 기록되진 못할 거란 건 확실해 보인다. 소모적이라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진작부터 나오고 있다.
과거 행실을 통해 미래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는 데 십분 동의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도둑질을 하던 이는 정승 자리에 올라도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과거에 집착할수록 앞을 보는 눈은 어두워진다. 후보자가 통찰력과 혜안을 갖고 있는지, 임무의 적임자인지 살피는 게 국익을 위해 우선이다. 그럼에도 국민 상식과 동떨어지거나 수습이 불가능하다면 무리할 건 아니다. 이순신 장군급 구국의 맹활약을 담보할 수 없다면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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