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대상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때의 이야기다. 도서관과 책이 낯선 분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감상을 나눠야 했기에, 책 선정에 고민이 많았다. 우선 글이 적고, 그림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작품이어야 했다.
한참의 고민 끝에 고른 첫 번째 책은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이란 그림책이었다.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해 버려진 그림책이 여러 동물을 만나 숲을 이루고, 한 아이의 꿈이 돼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드디어 첫 번째 시간, 수어 낭독이 시작되자마자 펼쳐진 뜻밖의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말았다. 그림책의 문장 대부분이 수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의성어와 의태어였기 때문이다. 수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실수였다.
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어렵게 모인 자리였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그림책을 선정하고, 사서의 미흡한 진행까지 겹치니 혹여 참가자들에게 실망감을 주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만 가득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수업은 별다른 막힘없이 흘러갔다. 처음 의도했던 주제도 잘 전달됐다. 청각장애인분들이 시각적으로 섬세한 덕분이었다. 이들은 수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그림을 통해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이날의 경험은 그림책이 가진 그림과 이야기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림책 속을 채운 이미지들은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의 마음을 교류할 수 있게 하는 창과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 꼭 많은 글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이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그림의 힘 덕분에 나머지 아홉 번의 수업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림책을 단순히 유아나 어린이가 보는 책으로만 보는 시선들이 있다. 그러나 글이 적어서, 그림밖에 없어서, 두께가 얇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이나 주제가 얕다고 할 수 있을까. 대상을 정해둔 책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책에 이끌려 집어 든 사람이 바로 그 책이 기다려온 대상이자 독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각장애인 참여자들에게 선물했던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라는 그림책이다. 부모님의 사랑이란 주제를 많은 글귀 없이 그림만으로 표현해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는 책이다. 그림책은 글로 한번, 그림으로만 한번 각각 따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책의 매력을 깊게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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