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3월 24일 이른바 수권법(受權法, 정식 명칭은 국가와 민족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이 독일 의회를 통과했다. 내용은 모든 법률의 제·개정 폐지 권한을 행정부에 위임하고 의회의 동의 없이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히틀러 독재에 고속도로를 깔아 준 독일 민주주의의 종언(終焉)이었다.
당시 수권법 통과를 위한 개헌 정족수는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에 출석 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었다. 그러나 나치가 3월 5일 총선에서 얻은 의석수는 288석으로 나치의 연립 정당인 국가인민당의 52석과 합쳐도 340석으로, 필요 출석 인원(431.33명)에 못 미쳤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나치는 갖은 편법을 썼다. 같은 해 2월 27일 독일 의사당 방화 사건에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엮었다. 이에 따라 공산당 의원 81명 전원과 사회민주당 의원 120명 중 26명이 체포되거나 도망·잠적했다. 나치는 이들 결석 의원을 기권으로 처리했다. 출석한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441표, 반대 94표로 수권법은 탄생했다. 94명이 출석해 모두 반대한 사민당을 빼고, 73석의 원내 4당으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중앙당을 비롯한 모든 군소 정당이 찬성표를 던진 결과다. 이를 두고 가장 권위 있는 히틀러 평전의 저자로 평가되는 이언 커쇼는 "독일 의회는 스스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고 했다.
검수완박 통과로 우리 국회도 스스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 이는 민주주의가 외부의 타격이 없어도 내부적으로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검수완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 "법체계상 모순되거나 문제점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였으나 표결에서는 소신을 꺾고 찬성으로 돌아섰다.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정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그 대표는 검수완박에 대해 시기도 방식도 내용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검찰청법 개정안에 전원 찬성했다. 그러자 '민주당 2중대'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래서인지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전원 기권했다. 하지만 '기권'과 '반대'는 엄연히 다르다. 이들도 국회 사망 선고장에 도장을 찍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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