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관악산에 올라갔는데, 사람이 드문 산길에서는 슬그머니 마스크를 벗었어. 지난 2년 동안 산속에서 '마스크 씁시다'라는 소리를 두 번 들었어. '예' 하고 지나쳤지."
우리는 산속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감염 예방에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그런 일을 한 번 겪었는데, 횟수가 적다고 해서 내가 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마스크 씁시다"라고 점잖게 말하는 게 아니라 "마스크 똑바로 쓰지 못해?"라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날 나는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으므로 그 고함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나운 검열관'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기분을 망치기엔 충분했고 아름다운 산길은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당신이 더 문제야! 누가 공공장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라고 면허를 줬나? 어디다 대고 욕을 하는 거야!"
어느 용감한 시민이 그에게 맞서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함께 소리를 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와 같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서, 상한 기분을 수습해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을 뿐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이런 일들을 겪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거대 권력의 존재를 예언하고 빅브라더라고 명명했는데, 알고 보니 빅브라더보다 더 무서운 건 '스몰브라더'들이었다. 서로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규칙 위반을 건건이 지적질하는 이웃들의 목소리는 거대 권력의 익숙한 협박보다 더 가깝고 피할 길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실외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5월 첫 한 주일은 감격스러웠다. 소소한 볼일을 보러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만끽했다. 해마다 봄이면 꽃과 맑은 날씨를 즐겼지만, 이번 5월의 도시에서 나를 가장 즐겁게 한 것은 향기였다. 숨 쉬는 공기에 이토록 향기가 가득한 줄을 처음 느꼈다. 도시의 매연조차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듯했다.
보아하니 나처럼 마스크를 적극적으로 벗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얼추 보아도 90%의 시민들은 이전처럼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가시적으로 소수자가 된 나는 또다시 어느새 익숙해진 불안감을 느꼈다.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는 거친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뒷덜미를 후려칠 것 같았다.
강제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실천한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의 실체가 질병이 아니라 이웃들의 비난인 것은 다시 한번 나를 슬프게 한다. 지난 2년간 성실하게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얻은 것은 자부심이 아니라 불안감이라니, 이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육 수준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참여 열의도 높다. 지난 2년간 코비드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에 얼마나 충실한지 모두 확인했다. 이제는 사회가 개인에게 신뢰를 돌려주면 좋겠다. 내가 해야 할,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너무 꼼꼼하게 일일이 정해 주는 사회는 숨이 막힌다.
마스크를 벗고 웃으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줄 알았는데, 맨살갗에 닿는 봄 햇살이 유쾌하여 자동으로 웃음이 나왔다. 향기, 필터를 거치지 않고 코끝에 직접 와닿는 향기가 무엇보다 감격스러웠다. 내 상부 호흡기가 필터 없는 바깥 공기와 만난 오늘, 정신에 뽀얗게 앉아 버린 두려움의 곰팡이들도 봄바람에 말끔하게 날아갈 것 같았다.
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이웃을 향해 나는 환하게 웃었다. 마주 오던 그는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으므로 입이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마스크 윗부분 모습만으로 사람의 표정을 파악하는 데 이미 익숙해졌으므로 그가 나의 인사에 역시나 웃음으로 화답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날, 나는 마스크를 벗었고 그는 마스크를 썼다. 우리는 생각이 달랐지만 나도 옳고 그도 옳다.
문화부 jeb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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