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다시 시간을 되돌려 살 수 있다면 그 삶을 어떻게 준비하고 바꿔나갈 것인가.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이른바 '인생 리셋'을 꿈꾸는 이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다소 뻔할 수 있는 열혈검사의 복수극이 달리 보이는 이유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첫 회에 주인공 김희우(이준기) 검사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강직한 검사로서 정재계는 물론이고 대통령마저 쥐고 흔드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조태섭(이경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결국 그가 사주한 이들에 의해 건물 옥상에서 추락하게 되는 것. 즉, 주인공의 죽음으로 문을 연다는 점에서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이야기는 파격적이다.
그런데 그 순간 저승사자가 나타나 김희우에게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김희우는 그래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로 되돌려진다. 되살아난 그가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이 살아있는가를 확인한 일이다. 그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김희우는 부모님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고 교통사고가 벌어진 날 이를 대비함으로써 죽을 위기에서 부모님을 구해낸다. 이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정보를 준다. 되살아난 김희우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걸.
어찌 보면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판타지는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코 벌어질 수 없는 판타지가 초반에 등장함으로써 이 드라마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갈 거라는 예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주는 실망감을 단번에 넘어서는 건 다시 산다는 '인생 리셋'의 강력한 판타지다.
"천천히 준비해서 완벽하게 옭아매세요." 저승사자가 말한 것처럼 김희우는 단번에 날 수 있거나 괴력을 갖는 그런 초능력을 갖게 된 게 아니다. 그저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하나 준비해나가야 한다. 고시 공부를 통해 검사가 되고, 제 몸을 지키기 위해 격투기로 몸을 단련시키며, 조태섭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금을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마련해나간다. 초능력은 아니지만 이미 한 번 겪은 세상이라는 건 그에게 그만한 능력으로 작용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타날 결과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래서 그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라면 지금 어떤 다른 선택을 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알 수 있어서다.
이처럼 다소 황당해 보이는 판타지 드라마가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 태생적으로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되는 현실 속에서 이른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말하는 세태들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주어진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완전히 삶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인생 리셋'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는 이뤄지기 어려운 꿈이지만, 그렇기에 이를 드라마로 구현해낸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몰입감은 커진다. 김희우의 인생 리셋에 대리만족 하고픈 욕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판타지 속 현실의 그림자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인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그 이야기 구조가 무협지를 닮았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김희우가 그 순간에 저승사자로부터 다시 살 수 있는 기연을 얻게 되는 건 무협지에서 그토록 많이 다뤄지는 절벽 추락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극한에 몰려 절벽에서 추락하지만 그 곳에서 만난 기연으로 오히려 내공과 무공을 얻어 되돌아오는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되살아난 김희우가 천하그룹의 딸 김희아(김지은), 김석훈(최광일) 지검장의 혼외자 김한미(김재경) 그리고 고교동창이자 선배검사인 김규리(홍비라) 같은 여성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는 상황이나, 조태섭에 복수하기 위해 법학과 선배이자 친구인 이민수(정상훈) 검사, 강직한 성품 때문에 지방으로 밀려난 전석규(김철기) 검사는 물론이고 부동산 경매의 살아있는 전설 우용수(이순재), 영향력 있는 정치인 황진용(유동근), 전국구 싸움꾼 이연석(최민) 같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측근으로 끌어들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무협지 서사에서 기연과 인연을 얻어 점점 자신의 세력을 불려가는 이야기는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는 김희우 검사가 조태섭이라는 절대 권력과 대항하기 위해 자기편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재해석된다.
물론 이러한 무협지 서사가 갖는 판타지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여기에 만만찮은 현실의 그림자를 더해 넣는다. 그 대표적인 건 조태섭을 무너뜨리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검찰개혁이다. 조태섭 라인인 김석훈 중앙지검장과 그 측근들인 장일현(김형묵) 검사, 그리고 최강진(김진우) 검사가 보여주는 부패는, 현재 대중이 갖고 있는 검찰조직에 대한 불신이 투영되어 있다.
장일현은 기업의 상납을 받아온 '스폰서 검사'고 사귀던 국대예술재단 성진미(박나은) 이사장의 비리를 덮어주는 일도 해온다. 최강진 검사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SHC엔터 소속 연예인들을 동원한 성상납과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병역비리를 저지르는 인물이다. 김희우는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김석훈 지검장 라인인 척 접근하고 전석규와 함께 이들을 하나하나 척결해나간다. 무협지 같은 판타지 서사를 가져오면서 그 소재로서 현실적인 그림자를 더함으로써 드라마의 극성을 높인 것. 현실에선 결코 쉽지 않은 검찰개혁 같은 일들을 척척 해나가는 김희우에게서 시청자들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현실성 깨서라도 얻고 싶은 판타지
사실 SBS가 금토드라마라는 편성시간대에 일관되게 세워놓은 작품들은 비슷한 색깔을 갖고 있다. 현실보다는 판타지를 그리고, 이야기의 깊이보다는 당장의 사이다를 주는 드라마가 그것이다. '열혈사제'부터 '모범택시', '원 더 우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이 그렇다. 이러한 판타지는 그 성격상 일정 부분의 현실성이 깨지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현실적이라 느껴지긴 하지만, 그것보다 당장의 판타지를 보고픈 갈증이 더욱 강력하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주말저녁을 보내고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도 이러한 SBS 금토드라마의 흐름 위에 있는 판타지 드라마다. 복수를 위해 우연히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마음을 얻는 주인공의 서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믿기 어렵지만, 드라마는 시청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위해 기꺼이 그런 우연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작위성이 드러나는 막장드라마들이 쓰는 방식이지만, 요즘처럼 사는 일이 갑갑한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전개가 주는 시원함이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괜한 현실성과 진지함 같은 게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한없이 시원했던 그 판타지의 쾌감은, 거꾸로 말해 현실의 갑갑함이 얼마나 철옹성처럼 깨지지 않을 정도로 공고한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김희우 검사가 검찰 개혁을 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조태섭 의원을 응징하는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건, 저승사자를 만나 죽을 위기에서 되살려지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기적 정도가 벌어져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니 말이다. 판타지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 시원함에 숨겨진 갑갑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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