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사천(私薦)과 공천(公薦) 사이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울릉군을 제외하고 국민의힘 대구경북 단체장 공천이 9일 완료됐다. 대구경북에선 국민의힘 공천이 사실상 당선인지라 경선 과정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바이지만 6·1 지방선거 경선 과정에서 탈도 많았고, 소동도 많았다. 후보들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았고, 또 정해진 공천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치단체장이나 광역·기초의원 공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무리수가 자리하고 있다.

단수공천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여론 지표나 엄정한 심사 기준 없이 특정인을 추천하다 보니 사천(私薦)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경북 A군의 경우 다수 언론에서 두 배 가까이 지지율이 앞서는 후보는 배제된 채 상대 후보가 단수추천됐다. 배제된 후보는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B시의 경우 국회의원이 자신의 친인척을 광역의원으로 공천하면서 지명도에서 훨씬 앞선 후보를 배제, 해당 후보의 큰 반발을 샀다. 기초의원 후보 두 명에게는 살고 있는 근거지를 급히 옮기게 해 공천을 주기까지 했다. 물론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물갈이나 신인 수혈의 필요성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또 다른 국회의원은 자신의 측근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재선의 부의장 출신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주었다. 이 국회의원은 차기 총선에 대비,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자신을 확실히 도울 후보를 심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공천은 광역이나 기초의원을 막론하고 정치에 입문하는 신진 가운데 당 기여도가 높은 이에게 공천을 주는 '신진 등용문' 같은 시스템으로 작동해 왔다. 부의장 출신에게 공천을 주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경북의 D군과 E시에서도 선두권을 달리던 단체장 후보가 경선에서 배제돼 특정인의 영향력이 투영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이번 국민의힘 공천 과정에서 사천(私薦) 논란이 불거져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작 더 구조적인 문제는 단체장 공천에서 정치 신인의 진입을 막는 '기계적 공정' 시스템에 있다. 대구의 경우 3선 제한에 걸린 달성군을 제외하고 7개 현직 단체장 가운데 1명만 교체됐다. 경북도 23개 시군 가운데 재판을 받거나 기소 상태인 후보, 야권(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제외하면 현직 단체장은 사실상 두 곳만 교체된 셈이다.

현직 단체장은 4년 또는 8년 내내 선거운동을 하는 셈인데 정치 신인들은 가산점을 주더라도 불과 한 달 이내의 경선 과정에서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권 관계자들은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 신인에게도 승리 가능성이 있는 '열린 시스템에 의한 물갈이'가 없다면 현직 단체장의 재선, 3선이 아성처럼 굳어져 풀뿌리민주주의의 설자리가 없어진다고 우려한다. 정치 신인은 20%의 가산점을 받지만 관변단체 등 현직이 가진 프리미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구경북 시군의 경우 특정 당 지지율이 60~70%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현직 단체장은 당 지지율의 절반(50%)은 넘겨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할 필요가 있다. 20%를 갓 넘는 단체장도 다수 후보가 참여하는 경선에서는 승리 가능성이 높다. 이 원칙만 굳건히 지켜지더라도 단체장의 교체 폭이 상당히 확대돼 풀뿌리민주주의와 지역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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