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성철의 새론새평]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는 편지(가상)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문재인입니다. 이젠 양산 사저에 내려왔습니다. 지난 월요일 퇴임사에선 제 자랑을 많이 했지만 솔직히 지난 5년을 되돌아보니 회한만 남습니다. 며칠 전 '자유'를 강조하신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잘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모두 잘 지켜지길 바랍니다. 저도 어젯밤, 5년 전에 국민들께 말씀드린 저의 취임사를 다시 읽어 봤습니다. 지난 시절을 반추해 보니 지키지 못한 약속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첫째,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마땅치 않다고 비판은 했지만 윤 대통령께서 기어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시대를 여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추진력이 대단하시더군요. 새로운 장소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이것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갇혀 있다 보니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더군요. 코로나19도 핑곗거리가 됐고요. 바라건대 윤 대통령께서는 때때로 삼각지에 들러서 서민들과 대구탕 드시면서 소통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나누고,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이것 또한 어기게 됐습니다. 왜냐면 개헌을 해서 권력을 분산하기에는 대통령 권력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또한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선 제 측근이었던 정치인들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어야 했습니다. 결국 '욕심' 때문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넷째, "안보 위기와 북핵 문제를 해결할 토대를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김정은과의 회담으로 평양냉면 먹고 백두산 천지에 가본 것뿐이었습니다. 윤 대통령께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를 꼭 이뤄 주시길 바랍니다.

다섯째,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과의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했지만 결국 내 편에서 인재를 찾게 됐고, 우리 진영 사람들과 국정 운영을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잘못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섯째,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무엇보다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취임 초 청와대 내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지만, 초기에 이벤트용으로 사진 촬영을 한 후에는 솔직히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국민과 특히 청년들에게 미안한 일이죠.

일곱째,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고 수없이 외쳤지만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입법화 단계이고, 제가 아직도 마음에 빚을 갖고 있던 조국 전 장관 사태로 저의 맹세는 공허한 메아리가 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공정·정의·상식의 나라를 꼭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여덟째,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장담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어찌 보면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인데 못 지켰어요. 집값 잡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너무 큰소리를 친 것 같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는 분들까지도 포함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걸려 퇴임사에서 윤 대통령께 국민 통합의 길이 진정한 성공의 길이다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저는 못 했지만 윤 대통령께서는 꼭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취임사를 되돌아보니 결국 약속을 지킨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호언밖에 없네요. 윤 대통령님! "깊은 강물엔 돌을 던져도 물이 흐려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죠. 진중하게, 심중을 굳건히 하시길 바랍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고독한 결정과 결단을 하는 자리입니다.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 '결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도, 더 소중한 것도 없습니다.

나라를 위한 위대한 결단은 이제 오롯이 윤 대통령의 몫입니다. 경험해 보니 섣부른 결정도 우유부단보다는 현명한 것 같습니다. 저를 반면교사 삼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국민을 잘 부탁드립니다.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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