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 전, 우포늪 생태체험을 하고 헐티재를 넘는 길이었다. 어둑한 밤길이라 조심해서 도로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커다란 노루가 앞을 지나갔다. 뒤이어 새끼 한 마리가 자동차 불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커브 길이라 위험했지만, 급정거를 했다. 앞 범퍼에 쿵 하는 소리가 들려 숨을 죽였다.
쿵쿵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궁둥이에 털 방울 두 개가 달린 새끼 노루가 산으로 달아났다. 녀석도 나만큼 식겁했을 것이다. 도로를 먼저 건너간 어미도 애를 태웠으리라. 로드 킬. 생각만 해도 아찔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짐승 한 마리 어떻게 되었다고 감옥 갈 일은 없겠지만, 두고두고 자책감으로 마음이 괴로웠으리라.
동물들이 위협받는 세상이다. 산을 잘라 길을 만들고 터널이 생기면서 생태계에 교란이 생겼다. 에코브릿지를 만들어 동물이 도로를 건너갈 수 있도록 해두었지만, 자연에 길든 짐승이 문명 세계에 쉬이 적응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차에 치여 죽은 생명이 땅바닥에 누워 있으면 미안하고 섬뜩한 생각이 든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멸종되는 짐승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산중에 호랑이와 곰은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호랑이는 일제 강점기에 가죽을 쓰기 위해 일본인들이 포수에게 돈을 주어서 포획했다고 한다. 곰은 웅담을 얻기 위해 잡았다고 했던가.
환경문제의 대부분이 인간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생태 중심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면 모든 생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생태 중심주의는 자연에 대한 모든 생물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인간과 자연의 윤리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환경운동이다.
인간은 자연 전체에 대하여 보존의 의무를 지고 있다. 인간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생명 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 산길에서 갑작스레 동물을 만나게 된다고 해도 그대로 들이받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누구나 지켜야 할 당위이자 약속이므로 단속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하다. 숱한 로드 킬 사고 후에 세워진 대책은 서행이다. 가창에서 헐티재 가는 길이 구간 속도 40km로 조정되었다. 달리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조절되지는 않는다. 천천히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16km 초과했다고 범칙금이 나왔다.
그것 참! 속이 답답하지만, 자연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운전하는 연습 중이다. 빠르게 오가면서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꽃 진 자리에 생명 키운 초록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아기 다람쥐가 쪼르르 바위 뒤에 숨어서 '까꿍'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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