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 목적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전시된 유물이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느끼고, 숨은 뜻을 찾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감상자의 지식이 총동원됩니다. 익숙한 것을 보고 아는 것과 연결합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가 떠오르고, '감상은 또 다른 창조 활동'이라는 정의에 동의하게 됩니다. 미술 전공자가 아닌 전문가들은 미술작품에서 무엇을 발견할까요? 여기 미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수학자와 화학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 미술과 만나는 수학적 상상력
'미술관에 간 수학자'(이광연 지음)는 미술작품에 숨겨진 수학의 묘수를 풀이합니다. 저자는 미술에 수학이 투영된 가장 큰 사건으로 원근법의 발견을 꼽습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에서 닮음과 비례관계라는 도형의 성질로 원근법을 설명합니다. 회화의 2차원성을 3차원의 세계로 이끈 이 혁신적인 기법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착시를 일으키는 기하학적 도형을 예로 들며 시각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유클리드 산책'에 등장하는 원뿔 모양 탑과 원근법에 의한 도로의 표현에서 황금비율에 의한 황금삼각형의 원리를 절묘하게 찾아내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의 수학적 상상력은 네덜란드 화가 브뤼헐의 '바벨탑'으로 옮겨가며 황금삼각형을 한 번 더 소환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았을 수 있으려면 알갱이의 역학, 멈춤각으로 탑을 쌓았어야 한다고 수학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갑니다.
베르메르의 '저울질하는 여인'에서 영감을 얻은 저자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공리에 관해 설명하고, 비례관계와 지렛대의 원리를 수학식과 표로 정리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화가들이 수학에 매우 조예가 깊었으리라 판단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책 곳곳에는 미술작품들과 작가의 수학적인 상상력에 의해 연결된 재미있는 수학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고대 수학자들과 만나고, 20세기 미래주의 작품에서 함수를 불러옵니다.
흔히 미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많은 학생이 수학 포기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만큼 수학과 미술의 간극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 풀이를 위한 수학이 아닌 수학적 상상력이 미술의 상상력과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수학과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미술은 그저 의미 없는 영역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의 깊이와 폭을 무한히 확장하는 매체로 활용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 명화 속 숨은 화학 이야기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수학과 과학 실력이 세계 최고라면서 왜 노벨과학상은 항상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까요? 끝없는 과학의 발전과 진화에도 왜 인간의 삶은 행복하지 못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관에 간 화학자'(전창림 지음)가 쓰였다고 서술합니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던 저자는 고분자화학을 전공하면서 미술에서의 화학 문제, 즉 물감과 안료의 변화, 색의 특성 등을 연구했습니다. 프랑스 유학 당시 실험실과 오르세 미술관에 수없이 오갈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느낌에만 그치지 않고 미술작품을 자세히 읽어가며 화학자의 독특한 시각을 가미한 명화 감상의 여정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상징과 비유를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 화학자의 시선은 성모마리아의 치마에 칠해진 울트라마린 염료에 집중합니다. 당시 금보다 비싼 청금석이 울트라마린 색의 원료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너무 비싸서 대용으로 사용한 시트라마린이 아주라이트라는 안료이며 이것은 안정성이 떨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돼 칙칙한 갈색으로 변했다고 증명합니다.
1400년대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에는 하나만 켜진 촛불, 그림 가운데 볼록거울, 신부의 볼록한 배, 강아지 등 수많은 상징이 가득합니다. 저자는 상징의 의미를 읽어냄과 동시에 이토록 자세히 묘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유화의 발명과 사용을 통한 정교한 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유화에 사용된 린시드 오일의 화학적 반응을 불포화지방산의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물감의 화학반응 때문에 '야경'이라는 제목으로 바뀐 렘브란트의 그림, 물감의 잘못된 혼합으로 심한 박리현상이 발생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흰색 안료에 들어간 납 성분 때문에 납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미국화가 제임스 휘슬러의 이야기 등, 우리가 몰랐던 미술 속 화학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에게 위 책들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자녀를 둔 부모님이나 일반인들에게도 융합적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것 같습니다. 창의성은 가르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마음 상태에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수학자와 과학자는 조형예술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예술의 상상력에 자극을 받아 그들의 상상을 새롭게 연결하고 확장해서 하나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상상에 빠져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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