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닮아서 인물이 좋네."
"그러게, 어른은 훤칠했고, 모친은 마음씨가 참 좋았지."
2022년 5월 7일에 복숭아나무에 뿌릴 농약을 사려고 부모님 때부터 단골로 거래를 하던 김천의 중앙농약종묘사에 들렀다가 일흔이 넘은 사장 부부에게 들은 말입니다. 어릴 때 한쪽 눈을 실명한 어머니(고 임외분)는 아버지(고 김달수)와 함께 60년 이상을 경북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에서 농사꾼 부부로 살았습니다. 2012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2년 뒤에 아버지께서도 어머니 곁으로 가셨습니다.
부모님은 자나 깨나 장남인 제 걱정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부스럼이 많았습니다. 고된 농사일을 마친 어머니는 저를 업고 캄캄한 산길을 돌아서 이웃 마을 동네의원을 오갔습니다. 여름철 밤, 십 여리 떨어진 외갓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저를 업은 것은 아버지의 푸근한 등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아포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에서 360여 명 중에 2등을 했습니다. 자랑을 하고 싶었던 저는 다음날 모내기를 할 논장만을 마치고 지게에 써레를 지고 소를 몰아 동네 어귀에 들어선 아버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소고삐를 받아든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2등 했어요." "잘 했네. 반에서 2등을 했구나." "반에서 2등이 아니고 2학년 전체에서 2등을 했어요."
아버지는 2학년 첫 시험에서 반에서 7등을 했던 제가 당연히 반에서 2등을 한 것으로 지레짐작을 한 것입니다. 그날 저녁 먹었던 어머니의 칼국수는 그 후로 제가 여름철에 사흘을 멀다 하고 먹는 최애 음식이 되었습니다.
땅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부모님은 제가 김천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의 소작을 했습니다. 두 분은 소작을 하며 겸손했지만 당당했습니다. 저도 단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5학년 때 아버지가 만들어 준 저의 지게는 지금은 그 흔적도 없지만,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겠다는 의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인 며느리(이영숙)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내도 부모님께 진심을 다했습니다.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하기 전에 손자인 광섭이가 태어났습니다. 80년대의 농촌의 환갑잔치는 건강의 상징이자 약간의 자랑과 과시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교사이고 친손자까지 태어나니 부모님은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돼지를 네 마리나 잡고 환갑잔치를 했습니다. 3년 뒤에 손녀인 유정이가 태어났습니다. 시골집에서 몇 년 동안 3대가 함께 생활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천기저귀를 빠는 일에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광섭이가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많이 흘리니 천으로 닦으면 코밑이 짓무른다면서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당신의 혀로 콧물을 훔쳐냈습니다.
누구도 세월 앞에 장사는 없나 봅니다. 사과농사, 자두농사, 벼농사, 밭농사 등으로 당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지게질과 호미자루를 놓지 않았던 부모님은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큰 수술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습니다.
동생들도 동분서주했습니다. 2000년 중반부터는 동생이 농삿일을 하고 저도 주말에 거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저 혼자 30년 된 자두나무 100여 그루를 베고 새로운 농사를 위해 품종을 바꾸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교장이 되는 것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야 교장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생전 바람처럼 오남매가 미리 모아 둔 돈으로 고향 마을에서 넉넉하게 잔치도 했습니다. 그리고 늘 유언처럼 말씀하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란 말도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시골집에 모여서 가족애를 나누는 누님들과 온갖 먹거리를 재배하고 푸근하게 나누는 인정 많은 동생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늘 저와 동행하는 아내 이영숙도 참 고맙습니다. 김치와 60년이 지난 씨간장 등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김가네 맛꼬방입니다. 이 모든 게 부모님 덕분입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에 아내와 함께 부모님 산소를 찾았습니다. 산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터를 잡았습니다. 고향 집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볕이 잘 들고 앞이 트인 밭의 중간에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시골에 가면 꼭 들르는 곳입니다. 고향 집에 사는 동생은 매일 들릅니다. 아내와 같이 절을 하고 준비해 간 꽃을 심은 뒤에 멀리 흐르는 감천을 보면서 나란히 앉았습니다.
"여보, 당신 나이가 몇이야?"
"이 사람이 새삼스럽게. 나는 작년에 환갑이었고 당신은 올해 환갑이잖아."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 세월 참 빠르지."
"광섭이 낳은 해에 아버님 환갑잔치하고, 유정이 돌잔치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영호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돌려서 부모님 산소를 보았습니다.
부모님 많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들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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