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국경으로 진격한 국군, 압록강가에 태극기를 꽂다

김정식

지금은 사라졌지만 십여 년 동안 전쟁기념관의 6·25전쟁 전시관 안에 특별한 디오라마 하나가 눈길을 끌었었다. 무장한 병사가 수통에 강물을 떠 담는 이미지다. 내 손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승리감에 찬 환희의 표정을 담고 있다.

6·25전쟁 때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장병들을 상징한 그 조형물 앞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시선을 멈추고 갔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실을 알기에 그 앞에서 더욱 서성거린다.

1950년 10월 26일 오후 2시 15분, 국군 6사단 7연대 장병들은 초산 서북쪽의 압록강 국경선에 태극기를 꽂았다. 부대원들은 너도나도 물가에 엎디어 청푸른 물빛 위로 출렁거리는 압록강물을 마셨다. 통일의 기쁨에 겨워 축배를 들이키듯 마시고는 다시 자신의 수통에 한없이 쓸어 담았다. 부풀어 오르는 희망의 빛을 가득 담아 부었다.

강물 위로 통일의 개선을 약속하는 태극기가 강바람에 펄럭였다. 9월 28일 서울을 되찾은 국군은 곧 바로 38도선을 넘어서고 평양을 점령하는 개가를 올린다. 영천회전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국군은 그 기세를 몰아 거침없이 북진하였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다. 개전 초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진의 세력 그 이상이었다.

국군1사단은 임진강변 고랑포에서 평양까지 하루 25km를 진격했다. 세계 전쟁사에서 쾌속 진격으로 알려진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스탈린그라드 전투)한 속도를 초월한 것이었다.

10월 20일 국군은 평양에서 이른 아침을 맞는다. 무서리가 즈려 내린 북쪽 땅은 꽤 쌀쌀하였지만 그 한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이미 교량이 폭파되어버린 대동강을 건너 평양 시내까지 깊숙하게 들어갔다. 역사적인 순간의 주역이 된 국군1사단의 승전보를 들은 전쟁지도부는 남북통일의 지도를 그리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이승만은 전의를 다그쳤고 맥아더 또한 종전과 달리 낙관하였다. 적의 핵심부를 점령한 선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국군의 강렬한 진격 의지를 본 맥아더는 평남 정주-함남 함흥까지 걸친 기존의 맥아더라인(북진 한계선)을 철회하고 선천-풍산-성진으로 북상시켰다. 이는 사실상 공격제한을 없애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추수감사절 파티에 남북통일이라는 성대한 예물이 놓일 것이다". 맥아더의 새로운 북진 한계선은 국군은 물론 유엔군에 이르기까지 각 부대마다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선을 향하여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달려가게 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승리에 도취되어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뜨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낙관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덫을 국군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맥아더도 미처 내다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북한군 지원에 나선 중공군이 10월 중순, 압록강을 넘어 적유령 산맥 골골이 두더지처럼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국군2군단의 좌측 부대로 앞서서 진격한 국군 6사단은 압록강까지 하루거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압록강! 압록강!"

이미 평양을 점령한 국군1사단은 비록 몸은 지쳤지만 사기충천하여 '압록강'을 외치면서 통일로 다가서는 진격을 계속했다. 청천강 북쪽 운산을 지날 무렵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을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질 않았다. 10월 25일, 그토록 순조롭게 진격해 가던 길을 갑자기 적의 대부대가 가로 막았다. 국군이 중공군과 최초로 맞닥뜨린 운산전투, '중공군 제1차 공세'다.

압록강을 향해 진격해 나가던 6사단 7연대는 마침내 초산에 이르렀다. 10월 26일 해가 저만큼 솟아올랐다. 무심한 압록강은 가슴에 품은 햇살을 강물 위로 흩뿌렸다. 승리의 환호성은 잠시뿐, 유속이 빠른 그 강물 위로 신기루가 되어 흘러 가버렸다. 그리고 찾아든 비극은 퇴로를 잃어버린 채 홀로 남쪽으로 철수해야 할 운명뿐이었다. 그즈음 어떤 국군부대도 7연대를 구원할 처지가 아니었다.

압록강은 한으로 얼룩져 흘러내렸다.

그리고 미쳐 압록강에 이르지도 못했던 국군6사단 2연대를 비롯한 2군단 예하 부대들도 각각 전투 지역으로 조여드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가 버거웠다. 전장마다 죽음의 불꽃이 튀기 시작하였다.

이제 압록강은 우리들이 나아갈 수 없는 장벽의 강이 되어버렸다. 압록강은 더 이상 그날 수통에 떠 담던 통일의 강이 되지 못한 채 70년이 흘러갔다. 그 흘러간 자리에서 징비(懲毖)의 퇴적층을 만날 수가 있다면 압록강은 다시 한을 넘어 희망으로 다가설 수 있으리라.

자유와 평화를 소망하는 새로운 시대의 궤도 위로 여한의 압록강을 올려놓고 싶다.

김정식

김정식/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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