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사남매 중 둘째 딸이다. 바로 아래 남동생, 그리고 막내 여동생이 있는데 이 막내 여동생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옥이 이모'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아주 각별했던 옥이 이모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외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딸들은 늘 뒷전이었다. 그에 대해 불만을 가장 크게 느꼈던 옥이 이모는 겨우 중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혼자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했다. 어려서부터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난히 똑 부러지고 야무졌던 옥이 이모는 어린 나이에 홀로 타지에서 공부와 일을 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내 기억 속 옥이 이모를 처음 만났던 건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다. 이모는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한 것이 잘 돼서 방배동에 있는 꽤 좋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작은 언니인 우리 엄마를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옥이 이모는 우리 삼 남매를 끔찍이 여겼고 늘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했다.
하루는 우리 가족을 롯데월드에 데리고 갔는데 나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이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강아지 마냥 신나게 뛰어다니던 나에게 이모는 TV에서만 보던 '미니마우스' 인형을 안겨주었다. 매년 방학이 되면 서울에 있는 이모를 보러 갔고 이모는 우리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줬다.
내가 5학년이 되던 해에 이모는 결혼을 했고, 시댁이 있는 미국으로 갔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어린 나는 힘들어했지만, 한국에 자주 올 것이고 미국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약속에 애써 웃으며 이모를 배웅했다. 미국에 간 후로 이모는 종종 편지와 사진을 보내줬고 가끔 전화 통화도 하며 우리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그런 옥이 이모가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미국 이모네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그곳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이모네 가족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방송국에 문의도 해보고 친구가 자전거 세계여행을 하며 이모가 살던 동네에 간다기에 사진과 정보를 주며 수소문해달라 부탁도 했지만, 그 어디에도 이모의 흔적은 없었다.
그사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막내딸의 생사조차 모른 채 영면하셨다. 이곳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행여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닐까 염려도 되었지만, 이모에 대한 그리움과 찾고 싶은 간절함이 너무도 크기에 염치 불고하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이 글이 멀리멀리 퍼져서 이모의 소식이 들려오길 간절히 바란다. 이모의 이름은 김금옥, 이모부는 강신욱, 첫째 딸은 강석영, 둘째 딸은 강석린이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것은 2007년이었고, LA 오렌지카운티에 살고 있었다. 이 이름들을 들어봤거나 소식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기를 지금도 온 가족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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