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아 박선애 선생 “제자들 만나 가르칠 땐 없던 힘도 생겨”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6호 영제시조 예능 보유자
영남서 전승된 시조창 일컫는 영제시조…영제시조판이 좋다는 의미 '영판 좋다'
"96세 된 제자, 96세 작고한 스승 위해" 내년 추모 헌정 발표회 준비 매일 연습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6호 영제시조 예능 보유자인 청아 박선애 선생이 제자들에게 영제시조를 전수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6호 영제시조 예능 보유자인 청아 박선애 선생이 제자들에게 영제시조를 전수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지난 11일 오후 3시쯤, 대구삼성창조캠퍼스 내 대구시무형문화재전수관 202호에서는 시조창 교육이 한창이었다. 열 명 남짓한 수강생들 앞에서 장구로 장단을 맞추던 스승이 직접 시범을 보이자, 작은 공간이 금새 쩌렁쩌렁한 소리로 가득 찼다. 고요하지만 내공 있고, 액센트로 힘을 더하는 소리가 그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왔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6호 영제(嶺制)시조 예능 보유자인 청아 박선애 선생. 그는 1928년생, 올해로 95세를 맞은 국내 최고령 현역 예능 보유자다. 백수가 다 된 나이에도 영제시조를 전수, 보급하고자 무형문화재전수관과 영제시조회관(남구 대명동)에서 일주일에 세차례 이상 강습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6호 영제시조 예능 보유자인 청아 박선애 선생이 제자들에게 영제시조를 전수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대구시 무형문화제 제6호 영제시조 예능 보유자인 청아 박선애 선생이 제자들에게 영제시조를 전수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영제시조는 영남에서 전승된 시조창을 일컫는 말이다. 시조창은 크게 서울·경기도의 경제(京制), 충청도의 내포제(內浦制), 전라도의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로 나뉜다. 영제는 영남인의 기질과 특성을 닮아 꿋꿋하고 웅장하며, 씩씩한 모습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고종 황제가 영제시조를 제일이라고 꼽을만큼 호평을 받았으며, 영제 시조판이 좋다는 뜻의 '영판 좋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박 선생이 영제시조와 연을 맺은 것은 1968년으로 거슬러 간다. 고종 때 영제시조 3대 명창 중 한 명인 경남 의령의 손덕겸을 이은 일관 이기릉 선생에 입문했다. 이기릉 선생은 당시 영제시조의 유일한 전승자였다. 그와 고락을 함께한 박 선생은 그의 후계자가 됐고, 199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박 선생의 제자 김승향 씨는 "박 선생님의 일생은 그야말로 영제시조의 원형 보존과 전승, 보급에 일평생을 다 바친 삶이라고 할 수 있다"며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영제시조회관에 들어서면 항상 이기릉 선생님 사진 앞에 인사를 드리고, 회관을 나서기 전에도 마찬가지로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신다. 항상 시간에 맞춰 반듯하게 옷을 가다듬고 준비해 강습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참 많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을 보존하는 데 힘쓰시고 있음에도, 전수비 등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혼자 어렵게 생활하시고 있다. 노령에 바깥 활동이 많다보니 제자들의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청아 박선애 선생이 제자들에게 시조창을 가르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청아 박선애 선생이 제자들에게 시조창을 가르치고 있다. 이연정 기자

특히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 지난 2년간은 박 선생에게 큰 타격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수업이 중단되고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하는 나날들이 이어져서다.

박 선생은 "당시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비교적 자유롭게 수업할 수 있게 돼 좋다. 이렇게 나와서 제자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삶에 활력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영제시조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여기 악보를 보면 음의 높낮이나 기교를 표현하는 시김새가 있지요. 이 부분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기릉 선생님이 가르쳐준 그대로, 정확하게 하도록 제자들에게 강조하죠."

박 선생은 내년 이기릉 선생 추모 헌정 발표회를 준비 중이다. 그는 "96세가 된 제자가, 96세에 작고하신 선생을 위한 기념 공연을 펼치려 한다. 발표할 노래를 매일 연습하며 의지를 다진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시조창은 할아버지 앞에서 손자가, 손자 앞에서 할아버지가 부를 수 있는 세대격차가 없는 노래다. 오랜기간 배울수록 호흡이 좋아지고, 노력하는만큼 실력이 느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무형문화재에 관심을 잃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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