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인간의 전부야!" 198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린 영화 실버턴 포위 작전(Silverton Siege)은 무장 강도들이 은행을 점거하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실제는 강도가 아니라 경찰에 쫓기던 테러리스트들이 은행으로 들어가 은행 직원과 고객 등을 인질로 잡은 것이다. 인질극을 벌인 그들의 요구는 한 가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프리카 정부의 극심한 흑백 차별 정책에 반대하다가 투옥된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라는 요구였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누구나 예상하듯 영화는 비극으로 끝난다. 테러리스트라 지칭된 자유 투사들의 최후를 장식한 대사가 '자유는 인간의 전부'라는 말이다.
지난 3월 초 한 경영자 과정을 진행하는 곳에서 6월에 있을 강의 의뢰를 받았다. 혁신 전략, 마케팅 트렌드 등 주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내용 대신 내가 무얼 말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소개 글을 보니 '핫 이슈'에 대한 강의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기업' 관련 포럼에 어울리지 않는 나를 섭외한 것도 핫 이슈 얘기를 기대한 게 아닐까 편하게 해석했다. 마침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난 터여서 새 정권의 화두를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이른바 보수주의의 기초인 자유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느 정도일까. 자유주의의 기본적 전제인 자율적 인간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을까. 지난 정권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한 이유가 무엇일까. 독재를 비난하며 자유를 외치던 민주화 투사들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영화가 큰 울림을 준 이유도 줄곧 나의 관심을 점령하고 있던 화두가 '자유'였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입헌 민주 헌법의 본질적 기본 원리'가 우리 헌법의 최고 이념이라고 해석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바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이어야 함을 헌법은 분명히 하고 있다. 한동안 정치권의 유행어였던 '경제민주화'를 보자. 헌법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게 대한민국 경제 질서의 기본임을 못 박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조정은 국민경제의 균형적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 분배 등을 위해 부차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자유와 창의 대신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앞세운 이른바 경제의 민주화는 원칙과 예외가 거꾸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유'를 35번이나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윤 대통령의 문제 인식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취임사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은 19세기 자본주의 초기의 인식이다,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키고 있는 양극화와 기후위기 등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다 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 재인식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의 정치적 경험은 국가주의, 집단주의 정권과 함께한 것이었다. 군부독재 후 세상이 달라졌지만 국민 개개인이 진정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누린 경험은 많지 않다. '정의를 독점'한 듯한 운동권 역시 대척점에 있던 독재 체제 못지않게 집단주의적 사고에 매몰돼 있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자유를 강조한 취임사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진정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완수하는 자율적인 인간상을 정부와 국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의 대명사인 만델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또한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반대해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사회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통합의 열쇠가 자유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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