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또 다가올 감염병 사태 대비해야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지침 한 줄 바꾸기 어려워
감염병 대응은 속도전…지자체 대응 권한 강화해야

허현정 사회부 기자
허현정 사회부 기자

코로나19 확진자의 격리 의무가 해제되는 '안착기' 진입 여부가 조만간 발표된다. 안착기가 되면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하고 코로나19와 관련한 거의 모든 방역 제한이 사라지게 된다. 새 정부가 결정하는 첫 코로나19 방역 정책인 동시에, 지난 2년 3개월간 이어온 K방역을 복기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 시기인 지난 2020년 2월로 되돌아가 본다. 국내에 코로나19가 상륙하던 때는 2015년 국내에 메르스 첫 감염자가 나온 지 5년째가 되던 해였다.

메르스로 큰 홍역을 치른 정부는 공공의료 인프라, 감염병 대응 인력 확보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상당수 감염병 대응 시스템은 당시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중앙정부조차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대구가 먼저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차원의 매뉴얼도 메르스 대응을 기준으로 마련된 것이어서 혼란이 많았다. 지역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현장에 적용할 방역 지침 한 줄을 바꾸기 위해 정부에 읍소와 부탁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 이어졌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맞는 지침이 없어 모든 것이 매뉴얼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대구에서 만든 것이 곧 새로운 지침이 됐다. 지침을 수정한 내용 하나하나가 대구로서는 '피, 땀, 눈물'이었다"고 떠올렸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와 초긴장 상태였던 시기에 중앙집권적 감염병 대응 체계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중요한 인력들이 중앙에 보고하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현장 대응은 뒷전이었다는 뒷말이 나올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속도가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향후 감염병 대응은 철저히 현장과 지방자치단체에 힘을 싣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신속하게 손봐 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위기 상황에 기술적 지원이나 지자체의 목소리를 반영한 대국민 홍보와 설득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감염병 사태에서 지역에 맞춘 탄력적 대응을 하려면 당국과 지자체 간, 그리고 각 지자체 간 정보 공유가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새 정부가 인수위 단계부터 강조한 '과학 방역'을 지자체 단위부터 실천하기 위해선 의사 결정을 위한 근거가 부족함 없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방역 당국의 권한이 비대해진 것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중앙집권적 감염병 체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 정부가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향후 당국이 '방역'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자영업자의 재산권, 시민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정책을 더욱 쉽게 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도 K방역에 대한 반성과, 언제 올지 모를 다른 감염병에 대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확진자의 세세한 동선 공개로 인한 사생활 노출, 러닝머신 속도 제한과 같은 과도한 방역 규제들은 여전히 K방역의 비과학적, 비윤리적 측면으로 지적된다. 신천지교회에서 시작해 이태원 클럽, 광화문 집회 확진자 등 소수 집단을 향한 혐오는 우리 사회에 깊은 갈등의 골만 남겼다.

새 정부는 '과학 방역'을 하겠다며 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논리적인 근거로 국민을 설득하는 방역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과학 방역'이 정부의 성과 강조에만 급급했던 '정치 방역'으로 회귀하지 않도록 초심을 지켜가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