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페(돋보기) 너머로 꼼지락 거리는 핀셋.
톱니바퀴, 태엽, 깨알 같은 부품을 만들고 다스려
째깍째깍 심장이 다시 뛸 때까지 집중, 또 집중….
대구시 중구 교동길 29, 공인사 박준덕(73) 명장.
그는 죽은 시계를 되살리는 '시계의사'입니다.
영국시계협회(BHI)의 악명높은 시계수리 전문의
시험을 독학으로 패스한, 동아시아에서 1명뿐인 명장.
그 명성에 해외까지 알려져 찾는 이가 많습니다.
먼 길을 마다않고 보내오는 시계는 대부분 명품이거나
사연 많은, 꼭 살려야 할 추억 어린 소장품들입니다.
"10초라도 가게 해주세요. 아니면 움직이는 흉내라도"
2014년 말 만주 독립투사 무덤에서 발굴한 유품이라며
삭디 삭은 회중시계가 왔습니다. 1840년대 스위스
파덱사가 만든 명품으로, 본사서 퇴짜 맞은걸 복원하듯
부품 열댓 개를 깎아 되살렸습니다. 꼬박 1년 걸렸습니다.
주특기는 더 이상 못 고친다는 '난치병 시계' 전문의.
서비스센터에서 사망선고를 받거나, 수리 기술자가
손보다 망치기라도 하는 날엔 어김없이 그를 찾습니다.
부러지거나 단종된 부품은 직접 만든 기계로 깍습니다.
오래 물을 먹어 삭지 않은 이상 거의 다 살린다고 했습니다.
1735년, 최초로 태엽으로 가는 시계가 등장했습니다.
발명가는 영국의 목수 출신 존 해리슨. 그가 계산해
구현한, 시계 톱니가 맞물려 1초의 오차도 없이 운동하는
피치(pitch) 원리는 이후 발전기·모터·자동차·항공기에도
적용돼 인류가 도약한 산업혁명의 원동력 이었습니다.
코사인, 탄젠트 삼각함수로 작동하는 헤어스프링.
기계,전기,전자,물리,중력,압력 등 과학의 집합체이자
디자인에 예술성까지 겸비한 가장 정확한 기계장치.
시간을 보는 것을 넘어 사람을, 품격을 보는 상징물 시계.
"지구가 멸망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그는 말합니다.
존 해리슨이 만든 시계가 산업혁명을 부르고
기술자는 또 그 위에서 명품, 예술품을 만듭니다.
그가 없다면 제 아무리 명품도 쇠뭉치에 불과합니다.
일흔을 넘겨도 찾는 이가 줄을 서니 늘 즐겁습니다.
기술은 끝이 없고 기술자는 정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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