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이 미셸 투르니에가 쓴 '뒷모습'이었다.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에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적었다. 사진과 함께 있는 글이라 읽기 편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자주 그 책을 펼쳐보곤 했다. 제목만 보고 골라잡은 책은 대개 관심 있는 몇 군데만 일견하고 덮어두기 일쑤다. 그런데 그 책엔 자꾸만 마음이 가고, 눈길이 닿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단지 그림책 같아 읽기 편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사진 한 장 한 장에 찍힌 누군가의 뒷모습, 그들의 이미지 위에 새겨진 글귀 하나하나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인도의 어느 농부가 쟁기를 어깨에 메고, 소 두 마리를 모는 사진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쟁기를 들쳐 맨 깡마른 농부의 어깨와 앞서가는 소의 앙상한 엉덩이. 그 둘이 닮아도 너무 닮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농부는 소의 큰 머리와 잘생긴 얼굴만 보고, 고르지 않는다. 잘 기른 소, 건강한 소는 그 뒷모습에 있다.
그래서 투르니에는 '뒤쪽이 진실이다'고 했던 것일까. 그는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뒤쪽이 진실이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 내기'에 여념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얼굴이 신문의 지면에, 또한 전파를 타고 스크린에 등장한다. SNS는 어떻고, 유튜브는 또 어떤가. 얼굴이 쏟아진다. 사진으로, 짧은 문장으로, 한 컷 한 줄이라도 자기를 올려놓으려 분주하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처럼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아닌 이들도 자신들의 얼굴을 드려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는 진실이 담겨 있는 뒷모습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이런 안타까움에 시인 '천양희'는 "성당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가.
지난해 말,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이 있었다. 그런데 붓을 든 철학자로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서 독특한 메시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그림 자체가 매체이고 메시지 아닌가. 많은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마그리트의 작품은 '금지된 재현'이었다. 그 그림은 한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에는 자기의 얼굴 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 비치는 것이었다. 마그리트는 뒷모습이 보이는 거울, '금지된 재현'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앞면만 보지 말고 뒷면의 진실을 보라는 것일까.
뒷모습엔 고스란히 우리의 삶이 묻어 있고, 표정이 있다. 나는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이라는 책을 뒤적이며 나의 뒷모습을 그려봤다. 그동안 나는 매일같이 거울을 보며, 나의 앞모습을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나의 뒷모습을 봐왔던가.
감감하다. 돌아서는 나의 등은, 내 뒷모습은 어떤 모양일까. 쓸쓸함, 인색함, 비열함, 이중성, 뻔뻔함, 온화함, 넉넉함, 자족함, 여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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