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종인 조선일보 선임기자 "개방된 지도자와 각성한 대중이 건강한 조직을 만든다"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지상 강연] '조선 망국사를 통해서 본 실패의 경영학'
"조선 성리학·사대주의 사로잡혀 외국 문물 도입 제 때 못해 망국의 길 걸어"
"옆 나라 일본 건너간 기술자·학문…개방적인 일본에서 기술 꽃 피워"

16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16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박종인 조선일보 선임기자가 '조선 망국사를 통해서 본 실패의 경영학'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임경희 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디지털국장 제공

"개방된 지도자와 각성한 대중이 건강한 조직을 만듭니다."

박종인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16일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조선 망국사를 통해서 본 실패의 경영학'을 주제로 강연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박 선임기자는 조선 후기 조선의 망국과 일본의 부흥은 1543~1907년 조선과 일본이 국란 상황에 대처한 차이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박 선임기자는 당시 조선은 성리학에만 매몰된 채 외국 문물 수용에 폐쇄적인 입장이었다. 반면 일본은 전쟁이 있을 때마다 적국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려 했다는 게 박 선임기자의 설명이다.

조선과 일본의 리더가 개방성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 것은 16세기 후반 국제 교류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유럽 대항해의 시대가 열리고 15, 16세기부터 기존 쌀이나 물건으로 물물 교류를 하던 것이 은으로 거래 수단이 바뀌며 은을 채취하는 기술이 중요해졌다.

비슷한 시기인 1503년 음력 5월 18일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조선의 노비 1명과 평민 1명이 '회취법'이라고 불리는 납이 섞인 은(銀) 광석에서 은을 채취하는 기술을 발명했고 연산군에게까지 보고가 됐다고 한다.

박 선임기자는 "연산군은 회취법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무시했고, 이후 30년쯤 뒤에 회취법 기술을 가진 조선 기술자 2명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게 된다.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천대받던 기술자를 스카우트해 1533년 회취법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외국의 기술자를 적극적으로 유입하는 등 새로운 기술 도입에 적극성을 보였던 일본과 달리 조선은 성리학 이념 아래 쇄국정책을 벌이며 오로지 중국과의 사대주의적, 수직적 외교만을 고수했다.

박 선임기자는 "당시 조선에서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이단이었고, 중국 외의 나라는 오랑캐였다"며 조선의 폐쇄적인 정치를 역설했다.

1589년 총통(조총)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동대문에 있던 종을 녹여야 한다는 주장이 임금에게까지 들어왔지만, 조정은 "옛것에는 신령한 힘이 있다. 따라서 부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박 선임기자는 "그 당시 조선의 리더들이 회취법과 철포(대포와 소총)를 무시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안 겪을 수 있었던 수모를 겪게 됐다"며 "급기야 1429년 세종 때는 조공 피해를 우려해 전국 금은광을 폐쇄하면서 조선의 광업이 실질적으로 종료되기에 이르렀고, 그 이후 19세기 말까지 금은의 민영 채취는 불법이 돼 버렸다"고 했다.

이 밖에도 17세기 조선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하멜'이라는 사람이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 제주도에 표류하게 됐고, 조선에 외국인이 있다는 걸 청나라 황실에 숨기기 위해 효종은 표류한 네덜란드인 36명을 여수, 강진 등지로 유배를 보냈다.

박 선임기자는 "천체 문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작 담장 쌓고 땔감 베는 잡일을 시켰다. 항해술, 천체 관측술, 무기 제조술을 배울 수 있었던 사람들을 유배 보낸 것"이라며 "이후 13년쯤 뒤 하멜과 함께 표류한 사람들이 일본 나가사키로 건너가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이들을 취조해 하루 만에 조선에 관련된 모든 정보들을 습득했다"고 했다.

박 선임기자는 조선과 일본의 사례를 돌이켜보며 기업을 경영하거나 조직을 구성할 때 가져야 할 리더의 덕목을 강조했다. 그는 "조직의 리더들은 대개 성공의 영광을 많이 생각한다. 그런데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실패다. 왜 실패했는지를 알아야 다음에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조선은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존재하다 1910년 8월 29일 공식적으로는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갑자기 망해 버렸다. 조선 후기 리더들의 태도를 타산지석 삼아 현대의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조직에 그 똑같은 실패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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