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직∼' 소리도 즐겁다…MZ세대가 이끄는 'LP 열풍'

올해 주문 작년보다 2.5배 늘어…“불편하지만, 그게 매력이죠”
美 판매량 34년 만에 CD 추월…앨범표지 보고 소장 매력 흠뻑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스트리밍에 비해 불편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또 다른 즐거움이죠."

경북 경산에 사는 대학생 김우영(24) 씨는 지난해부터 LP음반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처음엔 그냥 LP로 음악을 듣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시작했다"며 "그러다 '지직'거리는 소리의 매력을 알게 됐고, 지금은 LP를 사면 그 노래가 완전히 내 것이 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MZ세대가 이끄는 'LP 열풍'

최근 전 세계 음반 시장의 핫이슈는 'LP열풍'이다. 2020년 상반기 미국에선 LP가 CD보다 많이 판매됐다. LP 판매량이 CD를 추월한 건 1986년 이후 34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미국음반산업협회(Record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LP 판매 규모는 약 2억3천210만 달러였고, 같은 기간 CD 판매량은 1억2천990만 달러였다. 이 기간 미국에서 판매된 LP는 2천750만 장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예스24에 따르면 2018년부터 3년간 LP 판매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년 LP 판매량이 2019년 대비 73.1% 증가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LP를 생산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에 따르면 올해 LP 주문·제작 문의는 지난해 대비 2.5배 이상 늘었다. 지금 당장 주문해도 최소 6개월은 지나야 음반을 손에 쥘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최근의 LP열풍은 7080세대의 추억소환보다 이색적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가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LP 구매자 중 2030 비율이 40.8%다.

이런 경향에 맞춰 가요계는 LP를 '굿즈' 개념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아이유,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도 잇따라 LP를 출시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소장하고픈 젊은 세대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최근엔 '검은색' LP의 통념을 깨고, 흰색‧파란색 등 젊은 세대의 감성에 맞춘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황재원 제임스레코드 대표가 지금껏 제작한 LP가 매장 한편에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김도훈 기자
황재원 제임스레코드 대표가 지금껏 제작한 LP가 매장 한편에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김도훈 기자

◆'아날로그'의 즐거움…'소유'하는 기쁨도

디지털 음악만 듣고 자란 MZ세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매월 1만원이 채 안 되는 이용료만 내면 전 세계 모든 가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를 사는 그들은, 왜 불편하고 생소한 LP에 열광하는 걸까.

2016년 대구 중구 공평동에 문을 연 LP바 '제임스레코드'. 이곳에서 만난 김익순(26) 씨는 손님으로 제임스레코드를 찾았다가 LP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5월부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는 있지만, 직접 앨범 표지를 보고 음반을 꺼낸 뒤 트랙에 맞춰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가 LP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대구 중구 향촌동에서 독립출판 서점 '더폴락'을 운영하는 김인혜(38) 대표는 '실물 자체가 갖는 고유한 매력'이란 점에서 그 답을 찾았다. 김 대표는 "서적 분야로 치자면 전자책도 있지만 출판이란 과정을 거쳐 나오는 책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LP를 사는 지인도 있고, 저 또한 카세트 재생기가 없지만 좋아하는 뮤지션이 카세트테이프로 음반을 내면 사게 된다. 모으고 소장하는, '물건을 갖는다'는 매력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서점
서점 '더폴락' 한편에 놓인 LP. 김인혜 대표가 매장에 음악을 틀기 위해 모은 것들이다. 김도훈 기자

◆뮤지션에겐 음악 알리는 새로운 플랫폼

대구에서도 인디씬(scene)을 중심으로 LP 제작 분위기가 싹트고 있다.

김인혜 더폴락 대표는 지역 인디뮤지션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작은 서점을 위한 노래'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각 뮤지션들이 서점을 매개로 만든 음악을 컴필레이션 LP로 엮고 공연을 선보인다는 기획이다.

황재원(43) 제임스레코드 대표는 LP 제작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는 2020년 하반기 제임스레코드 컴필레이션 LP앨범 'Everyday James'(에브리데이 제임스)를 발매한 이후 지금까지 8장의 LP를 냈다. 올해는 4장의 LP가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황 대표는 "가게를 찾는 손님은 20대부터 60대까지로 다양하지만, 고객의 90% 정도가 2030세대일 정도로 가능성을 실감한다"며 "LP를 통해 지역 뮤지션의 음악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엔 지역 밴드 '디파이'와 '애쉬트레이'가 컬래버한 LP앨범이 공식발매 이전 예약판매분 300장이 모두 판매돼 화제가 됐다. 문화기획자이자 이 음반을 기획한 양동기(디파이 멤버·활동명 인디생존자) 씨는 "대중이 소비하는 패턴을 따라가다 보니 운 좋게 팔린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LP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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