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제자들의 손으로 되살아난 예술혼 - 1세대 피아니스트 이경희

6·25전쟁 중 대구 정착…피아노 음악의 토대 닦아
대구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교향악 운동

1953년 남산여고와 대구피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기의 이경희 선생
1953년 남산여고와 대구피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기의 이경희 선생

코로나19로 위축됐던 문화예술계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반가운 공연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구콘서트하우스가 기획한 대구예술가 초청 '5월의 피아노 선율' 공연이 수요일부터 오늘까지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어 눈에 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유망주들과 신진 피아니스트의 무대에 이어 오늘은 남성 연주자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오랜만에 활기찬 피아노 연주회 소식을 들으며 향토 피아노 음악의 토대를 닦은 연주자들의 기록을 들춰본다.

1950~60년대 대구에서 펼쳐진 공연 팸플릿을 펼치면 반주와 협연 이름에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피아니스트 이경희(1916~2004) 선생님이다. 예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가 낮았고, 특히 여성의 사회 활동이 드물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활동은 더 특별했다. 이경희 선생님은 6·25전쟁 중 피란지 대구에 정착해 피아노 음악의 토대를 닦은 분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성장했고 초등학교에서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화여고보로 진학한 후 정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는데 선교사에게 배웠다.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이하 이화여전)에 진학하는데 피아노과에 입학한 27명 가운데, 1938년 졸업한 사람은 선생님을 포함해 단 7명뿐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이화여전 연구과 2년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조선일보사 주최 제1회 신인연주회에 출연해 1등 없는 2등 상을 받은 것은, 그에게 피아노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준 동력이 됐다. 특히 1940년대 후반에는 당대 최상급 연주자였던 계정식(바이올린), 김생려(바이올린), 안승교(비올라), 김태연(첼로)으로 구성된 현악 4중주단과 함께 중국 여러 도시 순회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이 시기 테너 하대응, 소프라노 김천애 등의 연주자와도 여러 차례 함께 호흡을 맞췄다.

이후 이화여고 교사를 거쳐 이화여대 조교수로 재직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란지 대구에 정착하게 된다. 대구피란학교 교사, 남산여고 교사로 재직하며 연주자로 활동했다. 1950년대 대구는 피란예술가들이 떠난 빈자리를 1.5세대 예술가들이 메우고 있었다.

이경희 선생님은 대구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함께 교향악 운동을 펼쳤다. 1957년 대구교향악협회 발기인으로도 이름 올렸다. 당시 교향악 운동을 이끌던 이기홍 지휘자가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을 때도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바리톤 이점희 선생을 비롯해 당대 음악인들의 독창회, 독주회 반주도 대부분 맡았다.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연주자들의 무대에도 자주 출연했다.

1961년 12월 효성여대 제자들과 함께(가운데 한복 입은 사람이 이경희 선생)
1961년 12월 효성여대 제자들과 함께(가운데 한복 입은 사람이 이경희 선생)

1955년부터는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 출강하다가 1956년부터 교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제1회 졸업생부터 지도하기 시작해 1982년 2월 정년 퇴임할 때까지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개인 지도를 한 제자들까지 합하면 대구지역 2~3세대 피아니스트 대부분이 그의 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표적으로 김화자, 박숙희, 송수복, 신지숙, 강중수, 백혜선, 신명식, 신희원, 이청행, 추승옥 등이 그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는 제자들의 연주회마다 한복을 입고 반주를 해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자들은 암보를 기본 원칙으로 해서 늘 악보 없이 무대에 오르던 스승의 모습을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딸을 음악가로 길러냈다. 피아니스트 윤진희, 바이올리니스트 윤진영이 그들이다. 특히 딸 윤진영 씨는 모친의 뒤를 이어 효성여대 음대 교수로 재직했고 손자(김현수), 손녀(김소정)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로 길러냈다. 이경희 선생님은 1982년 정년 퇴임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섰다.

회갑, 정년, 칠순, 팔순 기념 연주회를 열었고 1994년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 30주년 기념 연주회에도 79세의 나이에 협연 무대에 오르는 등 85세까지 무대에 서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음악 장르 중 작곡가는 곡을 남기지만 연주자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될까. 특히 녹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음악의 토대를 닦은 연주자들에 대한 기록은 공연 팸플릿이나 사진으로만 남아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아쉬움을 불식시키는 연주회가 준비되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오는 6월 3일 피아니스트 이경희 선생님을 추모하는 기획 공연을 준비한다. 생전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무대라고 하니, 제자들의 손을 통해 되살아난 이경희 선생님의 예술혼을 만나볼 기회라는 점에서 기대된다.

임언미
임언미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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