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룡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안무의 '아이튜브'(i tube) 작품이 지난달 15일 서울 남산자락에 있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한국현대무용협회 주최로 열린 2022 국제현대무용제에 초청되어 관객과 조우했다.
대구시립무용단은 1981년 한국 최초의 현대무용(Modern Dance) 전공 무용단체로 창단됐다. 2011년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이전, 대구시립무용단은 전국 14개 국공립무용단 중 유일하게 현대무용 전공으로 구성된 단체였다. 그만큼 존재감이 남달랐다.
초대 단장 김기전을 필두로 구본숙, 안은미, 최두혁, 박현옥, 홍승엽을 거쳐 현재 김성룡 예술감독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축적된 예술적 역량이 예사롭지 않다. 함경도 함흥 출신인 김기전 초대 단장은 특유의 강인한 정신과 여장부적 기질로 대구시립무용단의 예술적 토대를 닦았다. 후임 구본숙은 프로페셔널리즘을 강화하고 해외 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앞장섰다. 파격의 안무가로 회자되는 안은미는 독창적 발상과 특유의 감각으로 대구시립무용단의 새 지평을 열었다.
대구 출신 소장파 안무가 최두혁은 대구시립무용단 최초의 남성 예술감독으로서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뒤이은 박현옥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현대무용 장르에서 요원하게만 인식됐던 이른바 대중화를 모색하는 한편, 대구 춤의 브랜드화를 표방하여 관심을 끌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내고 대구시립무용단 수장이 된 홍승엽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무용수들의 기량을 한층 끌어올렸다.
바통을 이어받는 김성룡 예술감독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문과 사회부조리를 치밀하고 정교한 공연문법으로 풀어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겨냥한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예술단체 수장으로서 최근 몇 년 지구촌을 강타한 펜데믹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간 것도 평가할 일이다.
대구에서 이토록 현대무용이 화려하게 꽃피운 배경은 무엇인가. 격동의 시기 척박한 토양에서 현대무용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춤의 선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적인 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최승희, 조택원의 대구공연은 늘 화제를 몰고 왔다. 그들이 선보인 소위 모던댄스 스타일의 이국적 몸짓은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6·25전쟁 때 대구는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문화예술인들의 집결지였다. 화가, 문인, 음악인, 연극인 등 장르를 망라해 대구로 향했다. 무용인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춤'지 발행인 조동화가 조직한 한국무용단에 합류하여 송범, 김진걸, 김문숙, 주리 등 신무용 2세대들이 대구로 피난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그의 아내인 현대무용가 박외선 또한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의 아들인 재미의사이자 시인으로 명성 높은 마종기의 문학적 소양이 잉태된 곳도 바로 대구였다.
지역 출신 무용가들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유학파 김상규를 비롯해 대구 현대무용 제1세대를 대표하는 김기전과 그의 남편 무용평론가 정순영의 역할도 컸다. 김기전·정순영 부부는 창작과 비평, 그리고 문화운동을 통해 대구지역 춤의 예술적 진화를 견인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대구시립무용단이 탄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시립무용단이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모던댄스의 본향인 세계무대로의 질주를 상상해 본다. 대구시의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한동훈·가족 명의글' 1천68개 전수조사…"비방글은 12건 뿐"
"죽지 않는다" 이재명…망나니 칼춤 예산·법안 [석민의News픽]
사드 사태…굴중(屈中)·반미(反美) 끝판왕 文정권! [석민의News픽]
尹, 상승세 탄 국정지지율 50% 근접… 다시 결집하는 대구경북 민심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